답보 상태 빠진 인터넷은행… 규제 완화 두고 찬반 팽팽

대주주 적격성 판단시 공정거래법 위반 관련 기간 단축·제외 목소리 나와
"은행업 핵심 규제사안 손대선 안 돼"…시장에 잘못된 시그널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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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파이낸스=오현승 기자] '1세대'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장기화하는 데다 새 인터넷은행 출범까지 연기되면서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산업 내 경쟁도를 높여 소비자 편익을 키우고 혁신서비스 확산을 유도하자는 게 이유다. 반면 법 위반 사안의 기준까지 낮춰가며 대주주 적격성을 완화하는 건 위험한 주장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은행 규제완화 모락모락?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30일 비공개 당정협의를 열어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 검토를 논의했다. 현행 대주주 적격성 요건이 인터넷은행 자본확충의 제약요소로 작용하는 데 더해 신규 인터넷은행 흥행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 후 "대주주의 공정거래법 등 위반과 관련해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안과 공정거래법 내부에서도 위반의 부분을 한정하는 안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분기 예비인가 신청을 받아본 후 심사·인가를 하는 과정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지 국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법 위반에 대한 기간을 줄이거나 일부 위반사항은 따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비공개 당정협의회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 첫 번째)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카카오뱅크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과거 계열사 신고 누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케이뱅크 역시 KT가 과거 지하철 광고 아이티시스템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2016년에 7000만 원의 벌금형이 확정된 바 있다. 두 곳 모두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현행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의 지분 10%를 초과 보유하려면 최근 5년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됐거나 금융관련법령에 따라 영업의 허가·인가 등이 취소된 기관의 최대주주·주요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5년 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조세범 처벌법 또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도 없어야 한다.

물론 금융위원회가 위반 정도를 경미하다고 인정할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 하지만 금융위는 지난 4월 KT가 금융위에 신청한 케이뱅크은행에 대한 주식보유한도 초과보유 승인에 대한 심사를 중단했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김 의장과 카카오 법인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기다리는 중이다. 두 인터넷은행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KT와 카카오는 특례법이 허용하는 수준인 최대 34%까지 지분을 늘리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법 위반 전력 빼자" 법안 발의도…"대원칙 훼손 안 돼" 반론

현재 국회엔 대주주 적격성을 따질 때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빼자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하면서 "현행법은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기존의 금융회사 수준으로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진출을 열어준다는 법률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며 "금융사와 달리 각종 규제 위반의 가능성에 노출된 산업자본의 특수성을 고려해 공정거래법 위반 등 요건을 대주주 적격성 심사 기준에서 제외해 혁신적 금융서비스의 발전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고 그런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위가 당장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가 되면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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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목소리도 높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은행업의 핵심 규제사안을 인터넷은행에만 예외로 둘 순 없다는 입장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은행 특례법 처리 후 겨우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대주주 적격성 틀을 무너뜨리려 하는 건 인터넷은행 특례법의 목적이 은산분리의 대원칙을 허물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거드는 데 있었다는 뒤늦은 고백에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당정협의 이튿날인 지난 31일 성명을 내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대주주가 적격성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데, 이는 당연히 적용돼야 할 규제를 위반한 대주주들의 잘못이지 규제의 잘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금산노조는 "대주주 적격성 요건은 인터넷은행과 기존 은행을 포함해 대부분의 금융사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제"라면서 "금융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금융업은 이러한 규제를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 완화가 금융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 준수와 같은 매우 중대한 경제원칙을 완화하는 건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행위"라고 염려했다. 이어 맹 교수는 "은행업 특성상 관련 법규의 준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인데, 이와 관련된 대주주 적격성 심사기준을 완화하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 "혁신적 사업모델부터 갖춰야"

이러한 가운데 금융위는 3분기 중 다시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를 접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달 신규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불허에도 불구하고 당장 현행 심사 방식을 바꾸지 않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이번에 (인터넷전문은행)이 하나도 승인이 안된 게 아쉽다. 심사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신청자가 준비를 더 잘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키움뱅크와 토스뱅크 컨소시움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요건의 문제가 아니라 각각 혁신성 부족과 자금조달능력에 대한 의구심 등 자격이 미달했기 때문"이라며 "제3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 선정이 흥행에 실패하고 선정된 사업자도 없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대주주적격성 심사요건을 완화하는 건 축구경기에서 골이 안 들어가니 골키퍼의 손발을 묶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도표=오현승 기자

인터넷은행 사업자 또는 신청자가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데 좀 더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업자본이 충분한 고민을 통해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킬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 및 영국 등과 달리 한국의 인터넷은행 사업자들은 혁신을 내세우면서도 사업모델로서 안착시킨 만한 아이템에 대한 고민 및 성과가 부족하다"며 "금융당국 역시 인터넷은행 플레이어들이 외국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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