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DT혁명①]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는 은행들

ICT 인재 비중 확대·모바일 채널 강화…실무면접 때 코딩능력도 평가
모바일· 온라인 경쟁력이 수익 좌우…핀테크 기업과도 '협력적 경쟁'

이제 지문을 통한 로그인이나 음성으로 돈을 이체하는 게 생소하지 않다.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은 투자자의 성향을 파악해 고객의 자산까지 관리한다. 디지털기술에 기반에 둔 대형 기업들은 속속 금융시장에 진입하고 있고, 금융소비자들의 디지털금융 니즈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Digital Transformation)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DT를 주도하기 위한 디지털 분야 인재확보 경쟁도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핀테크 랩(Lab) 운영을 통한 은행과 핀테크 기업 간의 '협력적 경쟁'도 활발하다. 세계파이낸스는 '은행권 DT혁명' 시리즈를 통해 은행권의 DT 현황과 향후 전략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1.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서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수익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분석적 능력 외에 창조적 해결능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요즘 은행 로보어드바이저는 시장상황, 투자성향, 투자목적 등에 따라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기술 등의 발달로 이젠 스마트폰만으로도 자산관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투자자에 적합한 추천 펀드를 소개하거나 은퇴시점을 감안해 자산배분 전략도 제시한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추천한 퇴직연금 수익률이 5%에 달하는 사례도 있다.

#2.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가 최근 도입됐다. 단 한 번의 정맥 인증만으로 통장과 인감, 비밀번호 없이도 예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창구 업무효율성 증대는 물론 비밀번호 분실 우려가 높은 고령층 금융소비자의 거래 편의성도 높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정맥인증 출금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은행은 '금융회사'일까? 머지않아 이 질문의 정답은 '디지털 기업'이 될 지 모른다. 최근 은행들은 일제히 디지털 회사임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변신에 나서고 있다.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외부 인재를 적극 발탁하고 신입행원 채용 때 정보통신기술(ICT) 인재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실무면접에서 코딩능력을 평가하는 은행도 있다. 디지털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모바일 채널을 강화하고 핀테크기업과도 과감한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 비대면 채널 강화 박차…자산관리도 '척척'

국내 은행들은 비대면 채널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은행 창구의 업무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선 모바일·온라인의 경쟁력이 은행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 한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주요 상품 비대면가입 비중을 살펴봤더니 창구를 통하지 않은 적금과 예금의 가입비중은 각각 45%, 21%였다. 펀드 비대면 판매 비중은 11%였다. 신용대출 및 전월세대출 등 주요 은행의 대출상품의 비대면 판매비중 역시 두자릿수를 넘어섰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는 비대면 판매채널이 개인화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은행 '챗봇(채팅+로봇 합성어)'서비스는 인공지능(AI) 기술 발달에 힘입어 그 서비스의 범위를 상품추천, 금융상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은행들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맞춤형 고객 자산관리에 나서고 있다. 시장정보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진단하고 가입자를 대상으로 특정 주기마다 정기 리밸런싱도 제안한다. 은행권의 디지털화가 단순 인증, 송금 및 결제를 간소화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들의 자산관리 만족도를 높이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은행권 CEO, 순혈주의 탈피 디지털 변혁 한목소리

 

은행권에서 최고경영자들이 DT를 핵심 경영과제로 선정하는 등 디지털 분야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 19일 DT선포식에서 '혁신을 통한 초격차 디지털 리딩뱅크 도약'을 경영비전으로 제시하고  △디지털 뱅크 혁신 △디지털 신사업 도전 △디지털 운영 효율화 △디지털 기업문화 구현 등을 4대 전략으로 선정했다.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이날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략을 이행해 디지털 리딩뱅크로 도약하자"고 강조했다. 

 

NH농협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선포식. 사진=농협은행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지난 3월 16일 가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커머셜뱅크에서 정보회사로 은행의 본질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달 취임한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은행이 디지털기업으로 변모하려면 IT인력을 뽑아서 영업사원으로 활용하는 식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인력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시중은행의 한 디지털 담당 임원은 "비대한 조직, 전통적 업무방식이 그간 은행의 모습이었다면 CEO의 DT선언을 계기로 디지털 혁신에 대한 전사적 공감대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금융연구소 소장도 "CEO가 어젠다를 설정해 '톱-다운' 방식으로 가지 않으면 DT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며 "DT 추진 방향을 CEO가 직접 주재해 최소한 분기 단위로 점검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B국민은행 '리브'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내부출신을 중용하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외부 인재를 발탁하고 신입행원 채용 때 정보통신기술(ICT) 인재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KB금융그룹은 윤진수 전 현대카드 전무를 국민은행 CDO(최고디지털책임자)로 영입한 데 이어 메트라이프생명보험, GS SM사업 총괄,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에서 CIO(최고정보책임자)를 지낸 최재을 씨를 KB데이타시스템 대표로 내정하기도 했다.

앞서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2017년 인공지능 전문가인 장현기 박사를 신한은행 디지털R&D센터 본부장으로 내정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삼성전자 DS부문 소프트웨어 연구소장을 역임한 김정한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IT전문가를 외부로부터 영입하는 건 그간 은행들이 해당 분야에 약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외부 전문가를 통해 디지털 조직으로 변화를 촉직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인재 중용…핀테크기업 육성 매진

디지털 변혁을 위한 움직임은 은행권의 채용 방식도 바꿔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 상반기 채용에서 인공지능(AI) 사업을 추진하던 ICT출신의 디지털 전문가를 채용팀장으로 선발하고 디지털·ICT 분야에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디지털·ICT 분야 채용의 경우 아예 연중 수시 채용하는 식으로 바꿨다. 필요 직무별 우수 인재를 적기에 채용할 수 있는 '디지털·ICT 신한인 채용위크'도 신설한다. 신한은행 측은 "금융권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디지털 및 ICT 관련 전공자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금융사들은 핀테크기업을 발굴· 육성하기 위한 핀테크 랩(Lab) 을 운영하고 있다. 핀테크 랩은 핀테크기업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상용화되기까지 사업성검토, 법률상담, 자금조달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담 조직을 일컫는다. 업무 공간과 오픈 API 및 클라우드를 활용한 테스트베드 환경 등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 투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자료=금융위원회, 도표=오현승 기자

 

 

현재 KB금융지주가 'KB 이노베이션 허브', 신한금융지주가 '신한 퓨처스랩' ,KEB하나은행이 '1Q 애자일 랩', NH농협은행이 'NH 핀테크 혁신센터', 기업은행이 '핀테크 드림랩', 우리은행이 '위비 핀테크랩'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핀테크 랩은 유망 핀테크 기업의 육성 외에 핀테크 산업 및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 은행의 핀테크 랩을 방문한 자리에서 "핀테크의 혁신 기술 및 아이디어가 금융권의 안정적인 시스템과 결합해 국내외 투자유치를 이끌어내는 허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핀테크 기업과 금융사가 한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며 시너지를 창출하는 좋은 사례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hsoh@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