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각축전 속 주도권 못 잡는 카드사들

플라스틱 카드에 대한 굳건한 믿음…새로운 결제방식 회의감 높아
전문가들 "흩어져 있는 결제서비스 한 데 모아 일원화 할 필요"

 

QR코드 방식 등 여러 간편결제 시스템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으나 카드사들의 반응은 거북이처럼 느려 사실상 시장 주도권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일부 카드사가 하반기 중 '한국 통합 QR페이'를 선보이겠다고 나서는 등 몇 가지 간편결제를 추진 중이지만 플라스틱 카드에 믿음이 굳건한 카드사들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전문가들은 간편결제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각 카드사가 개별적으로 출시한 결제플랫폼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높은 신용카드 이용률에 QR코드 결제방식에 소극적인 카드사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롯데·BC카드는 금감원과 함께 하반기 중 모든 가맹점에서 단일 QR코드로 결제가 가능한 '한국 통합 QR페이'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통합앱을 통해 가맹점에서 QR코드뿐만 아니라 바코드결제, 지난 1일 카드사들이 모여 출시한 근거리무선통신(NFC) '저스터치(JUSTOUCH)' 결제까지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들 카드사들은 모두 QR결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거나 추진하고 있는 카드사들이다. 금감원은 나머지 카드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통합 방안을 검토중인 상태지만 아직 한 차례 논의만 이뤄졌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서울페이, 소상공인페이, 제로페이 등 각종 페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 카드사들이 의무수납제로 유지되고 있는 신용카드의 굳건한 입지 탓에 QR코드 등 새로운 결제방식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1998년부터 시행된 의무수납제를 통해 국내 1인당 평균 카드보유 수는 3.6개, 지난해 기준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627조원에 이른다.

특히 카드사들은 여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간편결제 서비스에 대해 회의적이다. 소득공제 혜택만으로는 캐쉬백, 포인트 적립, 신용공여 등 신용카드의 혜택을 앞서기 어렵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플라스틱 카드로 결제하는 데 익숙해진 고객들이 핸드폰을 켜 앱을 구동하고 QR코드를 생성하는 QR코드 방식 등 간편결제에 얼마나 반응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이미 국내결제시장에선 플라스틱 카드 결제가 간편결제"라며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던 중국, 동남아시아와 국내 결제시장은 완전히 달라 QR코드 결제방식이 큰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드사 관계자는 "한국형 QR페이 사업은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각종 QR코드 기반의 간편결제가 쏟아지고 있으니 일단 모양새라도 갖추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QR코드 기반 등 간편결제와 관련해 카드사들의 미온적 대응과 함께 중구난방적인 모습도 비판의 대상 중 하나다. 소비자 및 소상공인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KB국민·NH농협·롯데·비씨·신한·하나·현대·삼성카드 등 8개 카드사는 최근 근거리 무선통신(NFC) 결제서비스 '저스터치'를 구축했다. 저스터치는 이미 지난 1일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다만 결제 가능 가맹점이 3만3000여개에 불과한 데다 한 대당 15만~20만원선의 단말기 설치 비용 부담을 두고 카드사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가맹점 확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또 신한·BC·롯데·하나카드는 오는 10월 손가락만 결제 단말기에 대도 결제가 가능한 '핑페이' 결제 시스템을 일부 편의점에 도입하기로 했다. 핑페이는 손가락(핑거)와 결제(페이)를 합친 말이다. 업계는 손가락 정맥을 인식하는 단말기 크기도 작아 가맹점에 설치하기도 쉬울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카드는 지난해 5월 손바닥 정맥으로 결제하는 '핸드페이'를 선보인 바 있다. 핸드페이는 손바닥 정맥 정보를 사전에 등록한 뒤 결제 때 전용 단말기에 손바닥을 올려 결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한국 통합 QR페이'까지 겹쳐진 것이다. 이처럼 몇 개 카드사가 모여 만드는 새로운 결제 기술이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맹점 입장에서도 각 결제방식에 맞는 단말기를 신규로 설치하는 등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이 새로운 결제 기술에 대한 공동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미 정부에서 추진 중인 서울페이를 비롯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삼성페이 등 신종 페이 종류는 20여가지에 이른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된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고객의 은행예금계좌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직불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기로 의결하면서 은행까지 합세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각종 간편결제 시스템들이 넘쳐나면서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카드사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시스템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QR코드 기반 등 여려 간편결제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차차 카드결제와 관련한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카드사들이 각각 갖고 있는 앱카드나 앱투앱 결제 방식을 하나로 묶어 결제서비스를 단순화·일원화해야 QR코드 방식 등 다양한 간편결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아울러 카드결제망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도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화 기자 jh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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