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대출 규제는 금융기관 건전성에 중점 둬야

안재성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기자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의 가계대출 규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규제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최고 40%로 제한됐다. 그나마 시가 9억원 이상 주택은 20%로 축소되며, 시가 15억원 이상은 0%다.

 

‘6.17 대책’으로 주택 매수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6개월 이내에 해당 주택에 입주하도록 강요했다. 사실상 갭투자를 금지한 것으로 그만큼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렵게 한 것이다. 또 전세자금대출을 주택자금에 활용하는 것도 차단했다.

 

최근에는 신용대출에까지 규제에 나섰다.  지난달 금융당국은 5대 은행 등에 대출 속도 조절 계획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1억원 이상 고액 신용대출에 집중하면서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고액 신용대출의 우대금리 및 한도를 축소했다. 전반적인 신용대출 금리 역시 인상했다.

 

아울러 쓰지 않는 마이너스통장의 한도 축소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까지 거론되고 있다. DSR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을 넓히거나 규제 대상 주택의 기준가격을 낮추는 방식이 주로 이야기된다.

 

그런데 정부와 금융당국이 규제하려 애쓰는 대출은 모두 리스크가 낮은 종류의 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은 모두 담보가 확실하기에 가장 안전한 대출로 분류된다.

 

은행권 신용대출도 대부분 상환능력이 충분한, 고신용자에게 집중됐다.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이 나이스평가정보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은행 대출고객 신용등급 분포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 신용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 646만명 중 신용등급 1등급 차주가 311만명(48%)에 달했다.

 

2등급 차주는 17%, 3등급 차주는 13%의 비중을 차지했다.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 중 고신용자(1~3등급)가 78%에 달하는 셈이다.

 

반면 정말로 위험한 대출, 즉 한계기업이나 저신용 개인사업자에 대한 대출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올해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정부 정책에 따라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개인사업자대출 원리금을 유예해준 금액은 약 36조원에 이른다. 특히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납부 유예된 대출이 총 2000여건, 약 1조700억원 규모나 된다.

 

경영이 어려워서 대출 이자조차 납부할 수 없다는 중소기업 혹은 개인사업자는 후일 빚을 갚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이런 대출을 ‘산소호흡기 대출’이라 칭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은 21.4%로 추산된다. 이미 지난해에 14.8%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었는데 올해 더 크게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우려를 무시하고,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에 대한 이자 납부 유예 혜택을 내년 3월까지로 강제 연장했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리스크 확대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순된 움직임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의 목적을 금융기관 건전성이 아닌, 딴 곳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에 강화되는 규제는 주택자금 차단이 목적으로 여겨진다. 신용대출 규제도 결국 고액 신용대출이 주택자금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걸 차단하는 게 목적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면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은 물론 이자 납부 유예까지 종용하는 건 한계기업들이 쓰러짐으로써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한 조치로 판단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 가해지는 대출 규제는 건전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IMF 사태’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그 여파가 매우 크다.

 

건전성이 아닌, 다른 목적의 대출 규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미 그 부작용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2금융권과 P2P금융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금융권 가계대출은 올해 7~8월 2개월 동안 4조원 급증했다. 7월에 1조8000억원 늘어난 데 이어 8월에는 2조2000억원으로 증가폭이 더 확대됐다. 올해 1~5월 동안 5조원 축소된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에 따르면 P2P금융의 8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7.4%를 기록했다. 6월 6.9%, 7월 6.5%로 올해 6월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은행 대출이 막힌 고소득·고신용자들이 2금융권이나 P2P금융 문을 두드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P2P금융의 주택담보대출에서 LTV 70~90% 구간의 대출 잔액이 과반을 차지했다.

 

은행이 안 빌려주니 어쩔 수 없니 고금리를 부담하면서 2금융권이나 P2P금융을 찾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커진다. 윤 의원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고신용자의 대출을 줄이는 것은 관리가 아니라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가계대출과 달리 한계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오히려 종용한 부분은 은행 건전성에 치명적이다. 최악의 경우 개인사업자대출 분야에서만 은행의 대손충당금이 1조원 이상 부풀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기본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정부의 규제권력이 향해야 할 곳은 주택자금 차단이나 산소호흡기 대출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건전성 강화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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