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연금제도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하려면

수급연령은 연장되고 최소 가입기간 규제는 폐지해야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공적연금의 기능 확대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주요국처럼 퇴직연금제도가 국민들의 주요 노후소득보장제도로 기능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높고 군입대가 의무이기 때문에 노동 시장 진입 연령이 늦어 연금 가입 기간이 짧다. 이러한 점에서 공적연금 역할의 확대는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52.4세에 불과했던 1960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56년 뒤인 2016년 82.4세로 30살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OECD 평균 기대수명은 1960년 68.4세에서 2016년 80.8세로, 12.4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인은 근로 기간보다 은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이는 연금제도에서 보험료 납입 기간보다 수령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적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근로자층이 지불하는 보험료로 은퇴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Pay-As-You-Go Method)이다. 반면 사적연금은 근로 기간 보험료를 적립해 뒀다가 은퇴 이후 본인의 적립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적립 방식(Funded Method)이다. 이에 인구고령화를 예상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퇴직연금제도와 같은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동안 공적연금에서 법정소득대체율을 인하하고 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방법으로 공적연금의 기능을 축소해온 주요국들이 이제는 사적연금의 수급 연령까지 상향 조정하는 상황이 됐다. 

 

공사연금 모두에서 수급 연령의 상향 조정을 하더라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공적연금의 경우 과거 약속했던 혜택을 감소시키는 것인 반면 사적연금에서는 혜택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연금제도에서 수급 연령의 상향 조정은 주로 은퇴 연령의 연장과 병행되는데, 은퇴 연령의 연장은  근로 기간을 증가시켜 생애 근로소득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는 사적연금의 가입 기간, 적립금, 연금액을 확대해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개선하게 된다.  

 

한국 역시 국민연금의 법정 수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은퇴 연령은 60세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퇴직연금제도에서의 법정수급연령은 여전히 55세에 머물러 있다. 은퇴연령을 60세로 상향 조정했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실제 근로 기간도 점차 연장되고 있기 때문에 퇴직연금제도의 법정수급연령도 최소한 60세 정도로 상향 조정돼야 한다. 그래야 퇴직연금계좌에 더 많은 적립금이 축적되고 연금 수령액이 증가해 퇴직연금제도의 소득대체율이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주요국에 비해 늦은 노동시장 진입 연령을 고려할 때 60세로의 조정도 충분하지 않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퇴직연금제도의 법정수급연령을 55세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퇴직연금제도의 법정수급연령을 60세로 상향 조정만으로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이 확대되지는 않는다. 가입 단계에서 충분히 보험료를 기여하고, 운용단계의 수익률을 높여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 기간 매우 제한된 사유에서만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에 인출하도록 허용하고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해지하는 행위는 반드시 금지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60세까지 근로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환경을 개선시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 가입 기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퇴직급여(퇴직연금 적립금)를 연금으로 수령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 가입해야 한다. 만약 46세에 퇴직연금에 가입할 경우에는 법정수급연령에 도달한 55세에는 무조건 일시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연금수령을 위한 최소 가입 기간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는 대신 퇴직급여의 ‘액수’를 연금수령 조건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주요국의 경우 일시금 수령을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급여액이 소액일 경우 연금수령의 효율성이 낮기 때문에 세제적인 패널티 없이 일시금 수령을 허용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의 법정 수급 연령을 60세로 상향 조정하되 가입자가 원할 경우에는 수령 기간을 65세까지 연장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이는 국민연금에서도 운영하는 제도이다. 은퇴자의 선호에 따라 수령 시기를 연장할 수 있다면 개인은 더 많은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산운용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 

 

주요국에 비해 퇴직연금제도를 늦게 도입한 한국은 그동안 기본적인 틀을 완성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퇴직연금제도의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소 미시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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