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로남불’ 열거주의(Positive) 규제

오명진 두리 대표

최근 국내 최대규모의 페이 업체와 해당 자회사 GA(독립보헙대리점)가 제공한 인터넷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다이렉트로 가입하여 모집수수료가 없는 인터넷 자동차보험을 GA가 리워드까지 제공하며 운영할 수 있는지 여부와 공익 목적으로 제공되는 ‘보험다모아’의 보험료 비교 시스템을 상업적인 목적의 대리점에 허용해도 되는지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더욱 문제는 이미 2016년에 금융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GA도 인터넷보험을 판매할 수 있다고 했으나, 금융감독원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련기관이 인터넷보험 비교 서비스를 운영해도 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아 GA가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또한 협회는 지금껏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막아오던 공익 목적의 보험다모아 보험료 비교 시스템을 최대 규모의 페이 업체에게는 아주 쉽게 열어준 격이 되어 버렸다.

 

열거주의(Positive)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 허용되는 것들을 나열하고 이외의 것들은 모두 허용하지 않는 규제 방식을 뜻한다. 반대로 포괄주의(Negative)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법 관념은 열거주의 방식의 규제를 채택하고 있다. 열거주의 규제가 강력하다는 말을 한다. 법에 언급되지 않은 부분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규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법안 개정의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법이 정하는 이외의 범위에서 위법 행위를 할 수 없도록 정해 놓고, 위법 여부가 모호한 영역은 반드시 해석을 통해 진행되게 하는 취지가 강한 방식이다.

 

보험은 열거주의 규제 관념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정보비대칭이 심한 산업이기에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매우 높으며 보험업법, 시행령, 시행규칙도 모자라 보험업 감독규정,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을 두고 보험사와 중개인 등 보험업 종사자를 관리 감독한다. 거기에 더해 손·생보 협회에서는 불공정 경쟁을 막기 위해 상호협정을 준수할 것을 약정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는 보험에서의 위법행위는 정보 비대칭에서 약자인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보호하기 위해 두텁게 쌓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올바른 방향과 목적을 갖고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험산업의 채널과 상품, 계약자 및 피보험자와 닿는 접점에서 영업, 마케팅 미 광고방식 등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인슈어테크 열풍과 더불어 보험에 기술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기술은 보험과 관련된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반드시 열거주의 규제 하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신용정보, 의료정보, 유사보험, 모집종사자의 위법여부 등이 그 것이다.

 

열거주의 규제 그 자체가 인슈어테크와 보험 산업의 혁신을 막는 것은 아니다. 열거주의 방식의 규제가 내포하고 있는 단점은 바로 규제를 집행하는 기관 및 담당자의 ‘내로남불’ 해석이다. 특히 열거되지 않는 영역에서 감독기관 혹은 의사결정기구의 유권 해석 또는 비조치 의견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페이 업체의 인터넷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를 운영하고자 하는 대리점은 이전에도 많았다.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점이 문의를 했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법규에 기재되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담당자의 압박을 무시할 수 있는 대리점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본인의 책임 권한이 없는 영역이므로, 상위 기관의 확인서가 있는 경우에 한해 결정을 내려주겠다는 면피성 의견이 남발되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경우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사자가 문의하는 내용과는 엄연히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식의 해석이다. 지금껏 혹시 모를 규제 위반에 대한 두려움은 페이 업체의 서비스 론칭 하나로 허무하게 해결됐다. 왜 이전까지의 문의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이슈이며, 페이업체는 명쾌하게 해도 되는 영역이라고 결론 내려주는 것인가?

 

열거주의 방식이 포괄주의 방식보다 강력하다는 말은 누군가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도 되는 범위의 테두리 혹은 해석을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모두 무마시키거나 혹은 광범위하게 펼칠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기관 입장에서 위법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선입견 하나만으로도 모든 논의와 논쟁을 통한 개선의 싹을 단칼에 잘라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묻힌 혁신적인 상품, 마케팅방식, 시스템, 기술의 무덤은 많을 것이다. 열거주의 방식은 법을 규제하고 집행하는 기관이 다양한 이유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규제이다.

 

<오명진 두리 대표(보험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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