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 보복, '소재 국산화 · 기술력 강화' 기회로 삼아야

피해 최소화 대책과 함께 다양한 외교채널 가동 통해 돌파구 마련해야
장기화될 경우 양국 IT 기업 모두에 치명타…中기업 어부지리 가능성

사진=연합뉴스



[세계파이낸스=장영일 기자]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대응하기 보다는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과 함께 소재부품 산업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자칫 손실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외교 채널 가동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일본이 소재 수출을 규제한  품목은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웨이퍼에 칠하는 감광액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이다. 일본 정부는 이 3가지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조치를 취해왔지만 4일부터 한국을 우대대상에서 제외했다.

산업계 안팎애서는 강경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선 상응조치가 가능한 방안들도 거론되고 있다.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들이다.  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일본 수출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대응은 일본의 2차, 3차 무역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미 규제를 발동한 3개 품목 외에 다른 품목으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6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에 버금가는 대항조치를 준비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그간 미국과 한국 등 27개국을 수출 허가 취득절차 면제국인 화이트 국가로 지정했지만 7월중 공청회 등을 거쳐 8월부터는 한국만 제외할 수 있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외에도 송금 규제,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강화 등의 추가 조치들도 거론되고 있다.

우선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등과 국제 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해야 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분에서 협력·의존하는 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정치외교적 문제로 대립할 경우 중국 기업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양국의 무역 제재가 확산될 경우 양국 제조업에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동종 업종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양국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소재부품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1조원 수준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이 규제한 3개 품목외에도 추가 제재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도 자립화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이번 일본의 조치가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조만간 핵심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책에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개발 로드맵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이 수입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중 의존도가 50%~90% 가까이 되는 핵심 부품들을 겨냥했다"면서 "일본의 소재를 수입해 우리가 만든 디스플레이 등을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 수입하는데 이같은 분쟁이 장기화되면 양국의 IT 업체들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이번 계기를 통해 정부가 더 많은 R&D 예산을 투입하고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에 대한 세제혜택 지원 등을 통해 일본을 따라잡자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외교적 갈등을 통상 문제로 연결시킨 것"이라면서 "양국 정부가 기업들을 외교 분쟁에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부품 산업의 자립도 좋지만 현 시점에선 일본과의 관계가 더 악화돼 양국 기업들의 피해가 확산되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양국간 무역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이 대기업 총수들을 잇따라 만나는 등 수출 규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지만, 아직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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