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연금 수령액, 수수료율 따라 30% 이상 차이날 수 있어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물론 나라마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직면한 상황에 따라 대답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된 인식과 변화는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사적연금, 그 중에서도 퇴직연금제도의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늦은 2005년에야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는데, 후발주자로서 이미 주요국의 시행착오를 학습할 기회가 있었고 성격이 급한 국민성 탓에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퇴직연금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역사에 비해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일 뿐 면밀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허점이 많다.

퇴직연금제도의 많은 역할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입자들의 노후자산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은퇴 시 전달해주는 '수급권 보호'다. 그 다음은 국민들의 노후자산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이다. 더 많은 노후자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금액을 적립하면 되겠지만, 그만큼 현재 소비를 포기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더 현명한 방법은 자산운용 수익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익과 비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돈을 모으기 위해 더 버는 방법도 있지만 아끼는 방법도 있다. 어쩌면 퇴직연금에서는 아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산운용 수익률의 결정 요인은 너무나 많은 반면 수수료(비용)는 금융기관이 부과는 수수료율에 따라 무조건 지출되기 때문이다. 가입 기간뿐만 아니라 수령 기간까지 고려하면 100세 인생에서 70~80년 동안 수수료를 납부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호주나 영국 역시 수수료 때문에 고민이 많다. 양국 정부는 수수료율에 따라 전체 연금자산의 30% 이상이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시장은 철저히 공급자인 퇴직연금사업자 즉, 금융기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수료가 높고 수익률이 낮은 공급자의 시장점유율이 높다.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퇴직연금제도가 쓰라린 시장 실패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방법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퇴직연금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 즉 가격 경쟁이 유일하고 강력한 해답이다. 시장이 가장 하지 못하는 것은 제 살을 깎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는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고 둘째는 비교가능성을 극대화시키며 셋째는 퇴직연금사업자 변경을 용이하게 해주면 된다. 

그동안 수수료 측면에서는 총비용부담률이란 수치가 활용되었는데, 이 수치에 문제가 있다. 쉽게 말해 총비용부담률은 가입자가 적립금 대비 비용으로 얼마를 지출했는지를 보여준다. 분자에 해당하는 비용은 매일 지불하는 수수료의 합계인 반면 분모는 연말에 쌓여 있는 적립금이다. 얼핏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시장의 관행을 고려할 때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가입자(사용자 및 근로자)는 기여금을 연말에 납부한다. 결과적으로 분자는 1년 동안 실제 가입자가 부담한 비용을 보여주는 반면 분모는 1년 동안 비용이 부과되지 않고 연말에 갑자기 불어난 적립금을 포함하기 때문에 총비용부담률은 수수료율을 과소 산출한다. 마치 퇴직연금사업자들이 낮은 수수료율을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총비용부담률의 분모인 연말 적립금을 실제 수수료가 부과되는 적립금으로 교체하면 정확한 수수료율이 산출되는 간단한 문제다. 다행히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총비용부담률의 산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의 막바지에 있다.

정확한 비용을 산출했다면 다음 과제는 비교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국내 수많은 가입자 중 본인이 실제로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비용이 다른 퇴직연금사업자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있는 가입자는 몇 명이나 될까? 더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고자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때 수수료가 추가되는지, 그리고 얼마가 추가되는지 아는 가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동안 퇴직연금제도와 관련된 정부 기관이 보여주었던 의지와 노력을 고려할 때 수수료율의 비교가능성 역시 머지않아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경제주체는 반드시 유인체계에 반응한다. 때문에 정부와 전문가가 설계한 유인체계에 따라 퇴직연금시장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가입자가 퇴직연금사업자별 비용과 수익률의 정확한 수치를 어렵지 않게 비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급자 중심의 퇴직연금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될 것이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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