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어떻게] LG디스플레이의 도전史…또다시 선구자로 나선다

암흑기 이후 네덜란드 필립스와 성공적인 합작, 글로벌 LCD 시장 평정
中 IT 굴기 여파 작년 상반기 적자 전환, 차세대 OLED로 시장 선도 계획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신화를 일궈낸 사람과 기업들을 보면 그 노하우와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최고라는 타이틀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최고가 된 이들은 숱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세계파이낸스는 성공한 기업 또는 인물들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은 무엇인지, 그들만의 노하우와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왜/어떻게] 시리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세계파이낸스=장영일 기자] LG디스플레이의 모태는 1985년 2월 세워진 금성소프트웨어다. 당시 디스플레이 시장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기업이 주도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가 필립스와의 전략적 제휴 성공을 기반으로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했는데,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근엔 중국의 IT 굴기로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가 위기를 맞았다. 결국 작년 디스플레이 시장 패권을 중국에 내줬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고부가 디스플레이로 시장을 다시 선도할 채비를 하고 있다.

◇ '국가적 암운' IMF 체제를 벗어나기까지

LG전자는 지난 1987년 1월 금성사(현 LG전자) 중앙연구소에서 TFT-LCD 개발을 시작해 1993년 9월 LCD 사업부를 설립했다. 이어 1995년 9월 구미 LCD 1공장, 1997년 12월 구미 LCD 2공장을 준공하면서 양산에 박차를 가한다.

당시 TFT-LCD 산업은 1995년 이전까지 성장성을 인식하고 대형 투자를 하기 시작한 샤프, NEC,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독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내 기업들은 1990년대초부터 참여하기 시작했고, LCD시장을 선점한 일본 기업을 쉽게 따라 잡기 힘들었다. 1990년대 중반 LG와 국내 업체들의 기술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1~2년 뒤져있었고, 원가는 높고 수익률은 낮은 진입 초기 단계에 있었다. 일본 업체들의 기술이전 기피에도 불구하고 LG LCD 기술수준은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알려진다.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LG LCD 사업의 가동률은 60%대로 저조했고, 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1998년은 외환위기로 한국 기업 전체가 휘청거리던 시기였다. LG 반도체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대기업 구조 조정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개혁의 구체 방안 중의 하나로 대기업간 빅딜을 주문했고, LG 역시 정부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LG 반도체는 재무 구조 개선이 불가피했다. 이에 따라 LG 반도체 내부에서는 선진 외국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각종 프로젝트들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었다. LCD 부문의 전략적 제휴는 이처럼 LG 반도체를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검토됐다.

◇ 필립스와의 합작 법인…LG디스플레이에 숨을 불어 넣다

결국 LG 반도체가 현대로 넘어가는 반도체 빅딜이 성사되면서 LCD 사업부의 소속에도 변화가 생긴다.

LG 반도체가 맡고 있던 LCD 사업부는 LG LCD(주)라는 새로운 법인으로 탄생했다. LG LCD(주)는 1999년 1월7일 경북 구미공장에서 LG전자 구자홍 부회장, LG LCD 김선동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법인 출범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또 국내 외자 유치 사상 최고액인 16억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며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법인인 LG필립스를 탄생시켰다. LG는 기술을, 필립스는 자금을 대는 구조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두 기업의 합작은 세계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했다. 상호간의 역할 분담 문제와 생산 및 R&D 문제 등 많은 과제들 속에서 두 기업의 전략적 제휴 협상 과정은 국제경영학에서 다루는 단골 주제일만큼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반도체 빅딜로 필립스와의 합작 협상팀에도 변화가 있었다. 협상의 주체가 LG반도체에서 구조조정 본부와 LG전자, LG LCD로 바뀌었고, LG전자의 임원과 M&A팀이 새롭게 협상에 참여했다.

LCD 시장이 다시 활황을 맞으면서 필립스와의 협상에 대해 LG 내부에서는 협상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LCD 사업이 이제 효자산업이 될텐데 왜 매각하는가', '지금까지 이룩한 기술과 노하우로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필립스와 제휴로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의견 속에서 협상은 진행됐다. IMF 구제 금융 지원을 받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외자유치가 가장 중요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LCD 사업이 예상과 달리 호조를 보이면서 협상 상황도 달라졌다. 1998년까지 LCD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평가액이 너무나도 낮았다. 그러나 바닥을 치고 상승하는 주기에 들어서면서 LG 입장에서는 오히려 주도권을 갖고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계약을 성사시키기로 했다.

LG는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주장하면서 제휴 협상의 주도권을 잡았다.

당시 구조조정본부 이종석 부사장의 지휘 아래 서윤원 상무와 권영수 상무가 기업 가치 가격을 포함한 모든 협상의 전권을 쥐고 발빠르게 대처했다. 협상팀은 협상에 관련된 모든 상황을 체크하며 자신들 책임 하에서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LG디스플레이


LG가 'Worldwide No. 1 company'가 되자는 비전과 실천 방안에 대해 필립스는 감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의 필립스 이사회도 수긍하면서 마침내 1999년 7월26일 최종 합작 계약이 체결됐다.

LG필립스 LCD는 출범 첫 달인 1999년 9월 매출이 2억달러를 넘어섰다. 필립스와의 합작으로 급성장하는 모니터시장에서 안정적인 내부 시장을 확보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주된 요인이었다.

1999년엔 세계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시장에서 16.5%의 점유율로 1998년 5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기술력과 시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 하던 가운데 2008년 2월 네덜란드 필립스가 지분매각에 나서면서 같은 해 3월 LG디스플레이로 사명을 변경한다.

이후에도 2009년 12월 세계 최소 두께 2.6mm TV용 LCD 패널 개발, 2010년 11월 세계 최초 23인치 '모니터용 240Hz LCD(TV겸용)' 양산 성공 등 세계 최초·최소 수식어 타이틀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2012년 대형(9.1" 이상) TFT-LCD 패널 시장에서 출하대수 기준 약 29%를 차지하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모기업의 경쟁력

LG디스플레이의 성장은 협력업체의 경쟁력에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LG디스플레이의 경쟁력'이라는 상생철학을 바탕으로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14년부터 4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과거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 유럽, 미국 등 외산 디스플레이 장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LG디스플레이와 중소 협력사가 긴밀히 공조하면서 장비 국산화 성과를 올렸다.

1998년 LG디스플레이의 LCD 장비 국산화율은 6%에 불과했지만, 파주 공장이 완공된 2006년 50% 수준으로 올라섰고, 현재 80%를 넘어서고 있다.

LG는 협력회사의 장비국산화를 위해 직간접 지원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LG의 장비 국산화 지원은 LG디스플레이의 협력회사뿐 아니라, LG전자, LG화학 등의 계열사 협력회사로 확대되며 협력사의 사업 확장과 매출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 무이자 대출 계획을 밝히는 등 협력사들이 사업자금을 무이자 또는 저리로 빌릴 수 있게 도와 경영 개선과 고용 안정 등을 지원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국내 30개 핵심 장비 협력사의 경우, 원가와 설비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매출이 2007년 1조4000여억원에서 2016년 4조원 규모로 180% 이상 증가했고, 고용 인원은 4500여명에서 8300여명으로 80% 이상 늘었다.

이같은 노력은 LG디스플레이가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8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협력사들도 해외 동반진출 등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올해 1월28일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에서 열린 `2019 동반성장 새해모임`에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왼쪽 네번째부터), 한상범 LG 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 구영수 신성델타테크 사장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LG디스플레이


◇ 中 디스플레이 굴기, 기술력으로 극복한다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에 이어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국내 기업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마침내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2017년 3분기 9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출하량 기준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2025년까지 독일·일본 수준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R&D, 설비투자 보조금, 인재확보 등에 퍼붓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공장을 지을때 중앙·지방 정부로부터 수백억위안을 보조받고 있다.

중국 업계의 저가 공세에 LCD 비중이 높은 LG디스플레이는 작년 1분기 적자로 전환하는 등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LG디스플레이 매출에서 LCD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프리미엄급 제품의 비중이 높은 LG디스플레이가 매출 및 제품의 면적 기준으로는 앞서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도 LCD 패널의 대형화와 OLED 양산 능력 확보를 목표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곧바로 체질 개선을 천명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LG디스플레이는 작년 4분기 잠정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8조원 정도의 시설투자가 예상돼 있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시설투자에 아낌 없는 투자를 지속해오고 있다. 최근 5년간 유형자산취득 현황을 보면 LG디스플레이는 2013년 3조4730억원, 2014년 2조9825억원, 2015년 2조3649억원, 2016년 3조7359억원, 2017년 6조5924억원 등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시장은 2016년 150억달러에서 2020년 41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세계 OLED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는 밝은 상황이다.

특히 OLED 대형화는 무리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LG디스플레이는 77인치 UHD OLED TV 패널을 출시하며 이러한 우려 마져도 불식시켰다.

그러나 중국의 매서운 추격과 후방산업 경쟁력 부족은 향후 국내 기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OLED 이후의 디스플레이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LCD로 이룩한 기록들을 OLED가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OLED 시장을 선점한 이점을 활용해 국내 기업들이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의 선구자 역할을 다시 한번 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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