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상품 '노후실손보험' 판매 왜 부진할까?

4년여간 3만건도 안 팔려…"팔수록 손해" 의욕 없는 보험사
당국 보험료 인하 압박 역효과…손해율 상승만 부추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파이낸스=이정화 기자] 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상품인 ‘노후실손의료보험’의 판매가 지지부진하면서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누적 판매건수가 4년여간 3만건에도 못 미치는 등 '노년층 의료비 부담 완화'라는 소기의 정책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후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너무 높아 보험사들이 판매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노후실손보험을 판매하는 삼성생명·삼성화재·현대해상·DB손보·KB손보·메리츠화재·롯데손보·농협손보 등 10개사의 지난해말 기준 누적 판매 건수는 2만7291건에 불과했다.

노후실손보험이 처음 나온 2014년 8월 이후 4년여간 채 3만건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특히 재작년 8월(2만6000여건) 이후 1년 4개월 동안 판매 건수가 1200여건에 그치는 등 갈수록 판매 부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일반실손보험 가입자 수와 비교하면 노후실손보험의 판매율 저조는 더 뚜렷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반실손보험 계약 건수는 3419만 건으로 국민 5178만명의 66%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노후실손보험의 경우 전체 가입대상에 해당하는 50~75세 인구 1570만명의 0.17%에 불과했다.

당초 노후실손보험은 50세에서 75세의 고령층을 위해 정부가 주도해 내놓은 정책성 상품이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층의 의료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한국인의 은퇴준비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자의 46%가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험사들은 고령층의 손해율이 높기에 일반실손보험에 고령층 가입을 잘 받아주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령층 특화 상품을 따로 만든 것이다.

노후실손보험은 일반실손보험보다 보장 한도와 가입연령은 확대하고 보험료는 20~30% 낮춘 것이 특징이다. 노후실손보험의 보장한도는 회당 100만원, 상해·질병실손의료비는 연간 1억원으로 회당 30만원, 연간 5000만원 수준의 일반실손보험보다 보장한도가 확대됐다. 노후실손보험은 요양병원 실손의료비와 상급병실료 차액보장도 각각 5000만원, 2000만원씩 보장된다.

자기부담률은 20~30% 수준으로 일반실손보험(10~20%)보다 높지만 실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낮췄다. 정부는 노후실손보험의 보험료를 당시 일반실손보험 대비 70~80% 수준으로 저렴하게 책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서 만든 상품임에도 판매가 극도로 부진하다보니 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주된 이유로는 손해율이 너무 높은데다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어 보험사가 판매의욕을 잃은 점이 꼽힌다.

삼성생명은 2015년 52.8%에서 지난해 65.4%로, 삼성화재는 63.1%에서 103.6%로 각각 손해율이 올랐다. 현대해상은 같은 기간 105.4%에서 112.4%로, DB손보는 75.9%에서 99.6%로 상승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노후실손보험의 대상인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젊은층보다 발병률이 높고 고액 보험금 부담도 크다"며 "현재 노후실손보험의 손해율은 너무 높아 보험사 입장에서는 팔수록 손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지난해 실손보험 감리 후 노후실손보험 보험료 인하를 추진하면서 일부 보험사가 보험료를 최대 16.6%까지 낮춘 것도 판매 부진을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병력 탓에 보험심사 과정에서 탈락하는 고객이 많은 것과 상대적으로 낮은 설계사 판매수수료도 판매 부진에 일조했다.

현재 노후실손보험의 판매수수료는 일반 보장성보험 대비 20%선에 불과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노후실손보험의 보험료를 억누르면서 판매수수료도 낮게 책정된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수료가 다른 보험상품에 비해 낮다보니 보험설계사 입장에서는 굳이 나서서 판매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험은 결국 보험설계사가 파는 것”이라며 “고객 입장에서 좋은 상품이라 해도 보험사나 보험설계사에게 매력적이지 않으면 판매가 활성화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지난해 4월 유병력자 실손보험이 출시되면서 노후실손보험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다.

유병력자 실손보험 역시 정책성 보험으로 실손보험의 보장 사각지대 해소를 취지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가입 심사 항목을 대폭 줄이고 암을 제외한 모든 질병의 최근 2년간 치료 이력만 심사해 병력이 없다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유병력자 실손보험 판매건수는 출시 2개월만에 11만건을 넘어서 노후실손보험과 대비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잠재고객이 많은 유병력자 실손보험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보험사가 노후실손보험에 대한 판매의지가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jh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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