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난한 자·고통받는 자를 위한 정책서민금융

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는 평생에 걸쳐 고아나 빈민 같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글을 썼다. 사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은 '채무자 감옥(prison for debtors)'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채무자 감옥은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법원의 명령에 따라 수감하는 제도다. 수감된 채무자들은 노동을 통해 채무를 변제해야 했다. 특히 채무자 감옥은 사적 제도로서 채무액 외에도 투옥에 필요한 비용까지 변제했기 때문에 가난한 채무자의 고통이 컸다. 

1869년 파산법(Debtors Act of 1869)이 채무자에게 징역을 선고하는 법원의 능력을 제한하기 전까지 가난한 채무자들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사 사건인 채무불이행에 의해 투옥됐다. 파산법이 시행된 1869년에도 감옥에 투옥된 채무자는 9759명에 이르렀다.

1824년 찰스 디킨스의 부친은 악명 높은 채무자 감옥 마셜시(Marshalsea)에 수감된 적이 있었고 12살이었던 디킨스는 하루 종일 구두약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그의 책 '작은 도릿'(Little Dorrit)에서 에이미 도릿은 마셜시의 장기 수감자인 부모에게 태어나 감옥 밖에서 하녀로 일하는데, 이것은 디킨스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가난한 채무자들이 채무자감옥에서 고통받았다면 21세기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2017년 불법 사금융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민의 1.3%인 52만명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등록대부 시장의 고객이 78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불법 사금융의 규모가 적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2017년 당시 법정 최고금리인 27.9%를 초과한 금리로 대출을 이용한 불법 사금융 이용자 비중은 36.6%였으며, 66%를 초과하는 초고금리 이용자 비중도 전체 이용자의 2.0%에 이른다.

심지어 이용자의 8.9%가 반복적인 전화나 문자, 야간 방문, 공포심 조성, 제3자 변제 강요 등과 같은 불법 채권추심을 겪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64.9%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고조차 못 하는 등 고통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사금융시장은 서민금융회사뿐 아니라 등록대부업체 대출조차 이용할 수 없는 서민·취약계층이 자금을 공급받는 마지막 시장이다. 지난 10년간 정책서민금융은 공급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지만, 여전히 불법 사금융에 노출돼 있는 52만명의 서민·취약계층이 존재한다. 

앞으로 정책서민금융은 양적 성장 외에도 질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대일 맞춤형 상담을 통해 서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지원 방식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개선·보완해야 할 것이다. 상담을 통해 복지 지원이 필요한지, 금융 애로 해소 및 금융 비용 부담경감이 필요한지, 채무감면 등 채무조정이 필요한지, 취업 지원·자영업컨설팅·금융교육 등의 자활지원이 필요한지 또는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민간서민금융과 정책서민금융, 또는 정책서민금융과 복지 간의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취약계층이 없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개선·보완 및 서민금융과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는 포용적 금융을 실현함과 아울러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묘비명에는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박해받는 자에게 공감하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21세기 한국의 정책서민금융도 서민·취약계층의 어려움에 더욱 공감하고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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