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가계부채, 무조건 틀어막는 것은 시장경제 위배

6년간 가계부채 질 개선 '뚜렷'…위험도 낮아져
양 보다 '질' 관리해야

사진=연합뉴스
[세계파이낸스=안재성 기자]  올해 6월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493조2000억원(한국은행 집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강화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했다.

DSR 계산에는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까지 포함해 차주의 대출 가능액을 크게 축소시켰다.

다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등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 역시 강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규제까지 도입돼 금융사들의 가계대출 증가세 자체를 억누를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내년도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6.5% 안팎으로 관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여러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의 날카로운 감시를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진 금융사 점포에는 즉시 당국이 현장검사를 나온다”며 “당국의 서슬이 워낙 퍼래서 가계대출 홍보 등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대출 등은 벌써 손 뗀 지 오래”라면서 “찾아오는 고객에게도 대출을 거절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걸까? 사실 현재 가계부채의 질은 그렇게까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우선 한은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56%로 절반이 넘는다.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이라는 담보가 확실하기에 가장 안전한 대출로 불린다. 부실화 위험이 극도로 낮아서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즉,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건전성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지난 6년간 가계부채의 양적인 규모는 빠르게 팽창했지만 질은 오히려 개선됐다는 견래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가계부채는 총 1468조원으로 지난 2012년 3월말의 911조4000억원에 비해 500조원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분할상환 대출(금액 기준) 비중은 같은 기간 66%에서 82%로 16%포인트 상승했다. 대출자 수 기준으로도 65%에서 81%로 뛰었다.

약정만기가 30년 이상인 대출 비중도 같은 기간 33%에서 59%로 크게 높아져 부실 위험도가 대폭 축소됐다.

아울러 그간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한 것은 주로 고신용자 및 고소득자였다.

2012년 3월말 39%였던 고신용자(신용등급 1~3등급) 대출 비중은 올해 3월말 57%로 뛰었다. 반면 중신용자(4~6등급) 비중은 40%에서 30%로, 저신용자(7~10등급) 비중은 21%에서 14%로 각각 줄었다. 

이 기간 중 고신용자의 주택담보대출이 257조4000억원, 중신용자는 87조원식 늘어난 것과 달리 저신용자는 되레 28조8000억원 줄었다.

소득구간별로는 연 소득이 5000만원 이상~8000만원 미만 비중이 2012년 3월말 26%에서 올해 3월말 30%로 4%포인트 상승했다.

반면에 연 소득 2000만원 이상~5000만원 미만 비중은 같은 기간 61%에서 54%로 하락했다. 올해 3월말 기준 연 소득 2000만원 미만 차주 비중은 7%에 불과했다.

이같은 현상은 신용대출에서도 발견된다.

한국금융연구원과 신용평가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공동 발간한 '가계부채 분석 보고서 2018년 제1호'를 보면 연 소득 20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올해 3월말 기준 신용대출 신규 약정금액은 약 5000억원으로 지난해말(약 6000억원)보다 1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연 소득 2000만원 이상~4000만원 미만 계층의 신규 신용대출은 약 3조7000억원, 4000만원 이상~6000만원 미만은 약 2조4000억원, 6000만원 이상~8000만원 미만은 약 1조5000억원, 8000만원 이상은 약 1조8000억원으로 모두 지난해말보다 1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고신용자와 고소득자일수록 빚을 잘 상환할 확률이 높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010년말 3%대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3월말 1.37%로 떨어졌다.

이는 그만큼 가계대출의 부실 위험이 낮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의미이므로 현 정부의 대처는 지나친 호들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이 담보대출이며 또한 대출자의 태반이 고신용자 및 고소득자”라면서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 가계부채 규모가 크게 염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올해 3분기 건설 투자(한은 집계)는 전기 대비 6.4% 급감했다. 이는 1998년 2분기(-6.5%) 이후 2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공동주택 분양 물량은 전국 1만9484가구에 불과해 전년 대비 22.7%나 줄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과도한 대출 규제가 건설시장을 억누르고 있다”며 “이는 곧 경제성장률 저하로도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도권 금융사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엄격히 감시할수록 저신용자 및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부터 줄여나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때문에 저신용자 및 저소득층이 2금융권으로, 이어 3금융권으로 점점 밀려나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곧 저신용자 및 저소득층의 원리금 부담을 가중시킨다. 

최성호 KCB 전문연구원은 "저소득층에 대한 신용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저소득층 연체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급진적으로 추진되면서 대출의 질이 악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부동산 폭등 현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가계대출 옥죄이기에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과도한 가계부채가  한국경제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개별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까지 하면서  가계대출을 억누르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시장경제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질타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출을 너무 억누르면 시중유동성을 악화시켜 소비 및 투자 부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신용자 및 저소득층이 돈을 빌릴 수 있는 통로가 막혀 한계차주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 무작정 억누르기보다는 가계부채의 질을 점차 개선해가나는 등 유연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뭐든 마찬가지지만 강제적인 조치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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