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급속한 인구고령화…사회보험 역할 재정립해야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이슈로 세상이 시끄럽다. 5년마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을 추계해 왔는데, 지난달 17일 발표한 제4차 재정계산(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기금 고갈 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앞당겨졌다. 고갈 시점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출산율, 경제성장률, 임금상승률, 기대수명, 기금운용수익률 등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다른 지표들은 예측하기 어렵더라도 2030년 출산율이 1.32~1.38명을 달성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통계청이 예측한 기대수명보다 실제 수명이 짧았던 적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도입했던 1988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6.5세였다. 그러나 통계청이 현재 예측하는 기대수명은 82.4세다. 과거 3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명은 예상보다 16년이 더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연금을 받을 사람은 더 증가하고 오래 살며, 보험료를 부담할 인구계층은 예상보다 감소하기 때문에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추계에서 몇 년 정도의 고갈 시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연금제도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는 것 대비 받는 연금액이 많게 설계됐기 때문에 고갈은 당연하다. 따라서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추기 위한 미세 조정 역시 중요하지 않다. 기금이 고달되면 완전한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 2057년 근로층이 부담하는 보험료로 노인층의 연금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국민연금뿐이겠는가? 이미 적자 상태인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 혜택이 많다. 왜 동일한 국민들에게 다른 혜택을 제공하는지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기초연금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확대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국민건강보험이다. 국민연금은 막대한 기금을 형성해 자산운용한 수익금을 연금재원으로 축적하는 기능이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은 순수한 부과 방식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13% 정도에 불과한 65세 이상 인구의 진료비 비중은 40%에 이른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인구의 비중은 2037년 30%를 넘어 2058년에는 4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재정추계 시 습관처럼 생산가능인구(15~64세)를 언급하지만 정작 보험료와 세금을 부담하는 주요 연령층은 30~50대다. 이들 연령층은 이미 빠르게 감소 중이다.

국민연금으로 한정할 경우 문제 해결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향후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각종 보험료와 세금을 고려한다면 과연 우리나라 사회보험(국가가 보험제도를 활용, 법에 의하여 강제성을 띠고 시행하는 보험제도의 총칭)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후발국가로서 이미 유사한 문제를 경험한 선진국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경험하는 한국은 인구고령화의 이슈에서만큼은 세계 무대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사회보험은 현재와 같은 인구고령화를 예상하지 못한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로 이제는 큰 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경우 제도를 도입하던 때부터 혜택이 과도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지난달 17일 제4차 재정계산과 함께 제시한 국민연금 개선안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안이 포함됐다.

우선 '가'안은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한 소득대체율을 내년 45%로 즉시 올리고 보험료율도 현재 9%에서 2019년 11%로 즉시 올리는 방안이다. 이후 보험료율은 2034년부터 12.31%로 올리고 이후에는 다시 재정계산을 통해 결정한다.

'나'안은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고 내년부터 10년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까지 올리는 방안이다.

그나마 소득대체율 45%와 보험료율 11%를 제시한 '가'안보다는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율 13.5%인 '나'안이 바람직하다. 과거 재정추계를 통해 이미 소득대체율을 40%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를 다시 확대하는 '가'안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구고령화에 직면해 있는 나라들 중 공적연금의 기능을 확대하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득대체율 40%를 상향해 보험료를 더욱 확대하기보다는 근로기간을 확대해 40%를 만족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미래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킬 수 있는 '나'안을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나'안도 고갈 시점을 늦추는 것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계층별로 분리돼 있는 연금제도를 통합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동일한 연금제도가 적용되도록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보험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고려해 가능한 자조노력으로 본인의 노후를 본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공적보험과 민영보험 간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후소득 및 의료비 지출을 위해 청장년기에 재원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적립 기능의 확대가 절실하다. 

사회보험에 적립기능을 가미하기 어렵다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그리고 민영건강보험이 사회보험의 단점을 철저히 보완할 수 있도록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사적연금 및 민영건강보험이더라도 사회보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 또는 상품은 단순히 시장에 위임하지 말고 준사회보험처럼 제도를 설계하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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