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요?] '빚 좋은 개살구' 수십개 아파트 평면

계약후 설계변경요청에 '건설사·입주예정자' 모두 난감
'간이모형· 후분양제· 평면축소' 등 대안으로 거론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갖가지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정부 정책도 연일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와 국민들을 겨냥한 이들 제품과 서비스, 정책이 정말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파이낸스는 기존 사용후기식 제품 비교에서 벗어나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새로운 형태의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의 [그래서요?] 시리즈를 통해 제품 ·서비스 ·정책의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합니다.<편집자주>


[세계파이낸스=이상현 기자] 가상공간(VR)기술이 발전하면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직원들이 잘 보이지 않는 평면에 대해 설명을 해줬지만 이제는 실제로 구현되지 않는 평면에 대해서도 VR 기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손쉽게 보여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러다보니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평면이 크게 늘었고,  일부 단지에서는 수십개에 달하는 평면을 구현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평면이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의 선택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다양한 아파트 평면이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는지 아니면 더 많은 불편함을 주는지 살펴봤습니다.

◇ 수십개 달하는 평면…소비자들은 '혼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대건설·태영건설·한림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짓는 '세종 마스터힐스'는 올해 4월 세종시 6-4 생활권에 분양된 단지입니다.

2개 블록 총 3100세대 규모로 총 66개 타입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인데요.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타입만 49개에 달합니다.

이처럼 세종마스터힐스의 평면이 66가지나 되는 것은 관할청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다양한 평면으로 아파트를 설계하도록 주문한 데 따른 것입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인 세종시에 짓는 아파트에 우수한 디자인과 다양한 평면이 설계지침서에 반영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양 이후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워낙 평면이 다양하다보니 모델하우스에 구현된 VR 기기로도 소비자들이 아파트 상품의 세부적인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분양당시 모델하우스 내에 마련된 VR 기기는 6대가 마련돼 있었는데요. 견본주택을 다녀간 방문객은 주말을 포함한 3일간만 약 3만5000명으로 집계돼 이용자들이 모두 이용하기에는 부족한 수량이었습니다.

실제로 모델하우스에 없는 VR타입의 평면은 다용도실에 창을 만들어놓지 않아 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일부 입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됐고 건설사와 입주예정자들이 지난달 2일 이를 협의하기 위해 분양 이후 설계변경 등을 놓고 미팅을 갖기도 했습니다.

건설사 측은 "실제 설계도면에서 소비자들이 불편해할만한 부분도 확인됐지만 심의받은 설계를 지금와서 임의로 바꾸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또 특정 세대만 바꿀 경우 다른 세대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단지의 경우 이런 VR기기조차 갖춰지지 않은 채 분양돼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일건설이 세종시에 분양한 '세종 제일풍경채 위너스카이'에서는 설계공모방식을 거쳐 총 81개 타입의 평면이 선보였는데요. 80개가 넘는 타입이 준비됐지만 견본주택에서 소비자들이 실제로 볼 수 있는 평면은 2개에 불과했습니다.

견본주택에 마련된 유니트 외에 다른 타입은 벽면에 평면도만 걸어놨습니다.

분양사 측은 장소가 협소해 가장 많은 물량이 배정된 두 타입만 유니트를 마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평면정보에 대한 충분한 사전 숙지 필요…'간이 모델하우스'도 대안

이렇다보니 다양한 평면이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종 마스터힐스 입주예정자 A씨는 "타입은 너무 많은데 VR만 만들어놓고 세부 인테리어 변경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평면선택도 특정 그룹을 선택하면 그 안에서 무작위로 선택되는 형식이라 일반 타입을 원했지만 그 평면을 선택하지 못한 입주자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여건내에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VR기기도 마련했지만 이 정보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에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이미 계약서까지 작성한 이후 소비자들의 불만사항을 반영해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모든 평면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소비자들에게 고지돼야 하지만 관련기준도 없고 시간문제, 모델하우스라는 장소문제까지 겹치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사람이 들어갈 순 없어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간이 모형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D로 평면도를 보는 것과 실제 3D형식으로 된 평면을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며 "모델하우스에 모든 평면을 구현할 수 없다면 별도의 공간에 실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작게나마 모형을 만들어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부동산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돼 온 후분양제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후분양으로 분양할 경우 고객들이 모형이 아닌 실제 들어가서 살 집의 내부를 직접 보고 분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면타입이 수십개에 달하는 경우 어려움도 예상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타입수가 50개라고 하면 실제 소비자가 50개를 다 보더라도 나중에 차이점이 기억에 안남을 수도 있다"며 "가짓수만 늘리는 설계가 아닌 불필요한 평면은 과감히 없애고 실용적인 소수의 평면만 남기는 것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ish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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