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요?] 비대면채널 대세인데…은행권, 장애인 접근성은 '관심 밖'

매해 모바일뱅킹 급증 속 은행·정부, 장애인 앱 접근성 나몰라라
접근성 준수 지침 마련 절실…"은행, 수익 외 공공성도 고려해야"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갖가지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정부 정책도 연일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와 국민들을 겨냥한 이들 제품과 서비스, 정책이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파이낸스는 기존 사용후기식 제품 비교에서 벗어나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새로운 형태의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의 [그래서요?] 시리즈를 통해 제품·서비스·정책의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은행들이 디지털분야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입니다. 소비자들의 영업점 방문 빈도가 줄고 모바일을 활용한 뱅킹이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예적금, 대출, 송금, 환전 등 금융 편의성을 높이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비대면채널의 비중이 늘면서 이 분야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은행들의 몸부림이 가히 처절한 수준입니다. 패턴, 지문 등 공인인증서 이외의 간편한 본인인증 방식에 은행 방문 없이 대출도 가능해지면서 이래저래 소비자들의 금융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장애인 금융 소비자들은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모바일 등 비대면채널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장애인들의 불편은 여전합니다. 은행권에서 이들의 금융편의성 향상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는 최근 화두인 포용적 금융 추세와도 어긋납니다. 세계파이낸스는 은행 모바일 앱 전략의 한계와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의 비대면채널 소외현상을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 지 짚어봤습니다.

◇말로만 모바일? …은행권, 장애인 앱 접근성 외면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도 디지털 분야를 유독 강조하고 있습니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지난달 조회사에서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온라인과 모바일의 비대면 채널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인력, 프로세스, 문화 등 조직 전체에 걸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이달 1일 창립 57주년 기념사에서 "고객별 디지털 경로를 세심히 분석해 디지털 환경에서 불편한 점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소비자들의 은행 이용 패턴이 급격히 바뀌고 있는 데 따른 것입니다. 이 같은 추세는 모바일이 주도했습니다. 다른 계좌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이나 ATM을 찾는 경우가 예전만큼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모바일뱅킹 실제 이용고객수는 6297만 명 1년 전보다 28.8%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모바일뱅킹 일평균 이용금액도 5조 3946억 원으로 1년 새 20.0% 늘었습니다.
도표=오현승 기자

하지만 은행권은 장애인 소비자의 모바일 편의성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충북대학교 모비즈랩이 한국장애인인권포럼으로부터 의뢰받아 조사해 지난해 3월 발표한 '국내 금융 및 전자정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평가 요약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보고서는 기업·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씨티·SC제일(가나다 순) 등 8개 은행의 메인페이지, 조회, 이체 작업 및 페이지(안드로이드 기준)를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모비즈랩 측은 "은행용 모바일 앱 접근성은 100점 만점에 평균 55.8점으로, 씨티은행을 제외하고는 장애인의 원활한 사용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 예로 당시 가장 낮은 점수(39.7점)을 받은 기업은행의 아이원뱅크는 전체적으로 명도 대비가 낮아 시각장애인의 사용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모바일 앱 접근성지침은 화면에 표시되는 모든 정보는 전경색과 배경색이 구분될 수 있도록 최소 3대 1 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저시력인에게는 최대 7대 1 정도는 돼야 실효성이 있다고 합니다. 신한은행의 신한S뱅크(현재 '신한 쏠'에 통합)는 초점 이동 시 함정(trap)에 빠져서 탈출할 수 없어 상지(上肢)장애인의 사용이 어려웠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초점 적용이 잘못된 사례. 모바일앱콘텐츠접근성지침2.0. 자료=방송통신표준심의회

특히 조사 대상인 8개 은행 가운데 명도 대비, 컨트롤 크기 항목에서 앱 접근성을 준수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자막·수화 콘텐츠를 담은 앱은 아예 없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접수한 온라인 서비스 관련 민원을 봐도 상황이 열악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민원 61건 가운데 수화 및 영상전화 서비스가 미흡하다는 의견은 절반을 넘었습니다. 보안 OPT 및 카드가 불편하다는 민원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보안카드를 발급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음성방식으로 이뤄지는 본인인증방식에 곤란을 겪습니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은행이 음성 안내서비스를 제공할 때 음성안내 시간이 지나치게 짧아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습니다.

◇주무부처·은행권 무관심 속 제도 개선도 '걸음마' 수준

은행들은 이미 국가공인 인증기관을 통해 웹 접근성 인증을 취득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비중이 높아진 모바일뱅킹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에서 모바일 앱 접근성지침 심사기준을 통과한 곳은 농협은행 '올원뱅크' 단 한 곳에 불과합니다.

카카오뱅크와 같이 오프라인 영업점 없이 비대면채널을 근간으로 하는 인터넷전문은행도 별반 차이는 없습니다. 은행권은 이제서야 앱 접근성 인증을 내년까지 받거나 향후 전산시스템 개편에 맞춰 인증마크 획득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건 아닙니다. 관련법 개정에 맞물려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인데요. 올해 8월 22일부터 개정된 내용이 시행되는 국가정보화기본법 32조엔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이 쉽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란 조항이 있습니다. 개정법은 웹사이트 이외에도 이동통신단말장치에 설치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게 특징입니다. 비대면채널의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법 개정 속도가 너무 늦은 셈이죠. 

장애인 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제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지난해 초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애인차별금지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신체적·기술적 여건과 관계없이 웹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장차법 시행령 14조 내 항목 중 '웹사이트'를 '웹사이트 등'으로 바꾸자는 제안인데요. 역시나 모바일뱅킹사용이 늘어난 걸 감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복지부는 사실상 손을 놨습니다. 해당 내용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미리 진작 이뤄졌다면 상위법인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까지 시간을 끌어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하소연합니다.

◇"우리도 고객"…사회적 약자 위해 인식 바뀌어야

장애인 소비자들은 자신들을 동등한 금융소비자로 봐달라고 국회, 정부, 금융권을 향해 호소합니다. 이를 위해선 주변의 인식을 바꿔 장애인 소비자의 불편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관심과 추진력이 아쉽습니다. 장애인 정책과 관련한 정부부처에서 장애인 소비자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어도 그 때뿐이라는 게 장애인단체의 주장입니다. 그나마 개선 작업이 이뤄지는 사안들도 공무원의 짧은 인사 주기 탓에 업무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업무 못지 않게 장애인 정책은 업무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장애인의 금융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엔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보건복지부나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등 주요 기관에서 금융권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모니터링한 후, 반드시 지켜야할 부분은 지침 형태로 만들어 이를 준수토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장애인 관련 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세심함도 요구됩니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는 과정 절차가 쉽지 않은 만큼 예측가능한 사안은 최대한 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 예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지난달 장차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장애인이 전자정보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하는데 필요한 수단에 웹사이트, 소프트웨어 및 모바일 앱, 한국 수어(手語)를 포함해 명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수어까지 규정한 점은 청각·언어 장애인들의 불편을 막기 위한 부분입니다. 송 의원은 "정보 관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표준이나 정책은 제대로 마련되고 있지 않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전자정보에 대한 장애인의 동등한 접근과 이용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 소비자들은 은행권이 새 서비스를 선보일 때부터 장애인들의 편의성을 고려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시각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최근 은행권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무인화점포를 예로 들며 "음성이나 화상통화 등의 서비스가 비장애인 위주로 돼 있었다"며 "도입 초기부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되면 나중에는 비용 부담, 접근성 불편으로 개선 작업을 진행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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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장총련 정책실장은 "장애인 단체들이 개선을 요구하면 그 때서야 뒤늦게 조처를 마련하고 그 조처도 미흡한 형태로 이뤄지는 게 반복되는 실정"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의 진보로 장애인들의 삶이 개선될 거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디지털화, 무인화로 인해 장애인 소비자들이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은 점점 악화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합니다.

모바일 분야는 아니지만 더디게나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가 ATM입니다. 지난 2010년 '장애인을 위한 CD/ATM 표준' 제정 후 장애인이 사용가능한 ATM의 비중은 전체의 90%까지 늘었습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끊임없는 개선 요구 끝에 은행이 소재한 건물 내에 있는 ATM을 이용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편의성이 높아졌다"며 "하지만 터치스크린 각도나 높이 및 휠체어가 진입할 공간을 위한 너비 등은 좀 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은행은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이면서도 공공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 소비자의 수요가 많은 서비스부터라도 공통된 지침을 만들어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렇듯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은행권의 자발적인 노력입니다. 장애인 소비자도 엄연히 그들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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