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요?] 국민연금, 스튜어드(집사) 역할 제대로 할까?

배당·손해배상 소송 등 주주권 행사 나서… 운용자산 규모만 635조
"적극적인 경영 참여로 기업경영 감시하고 연금이익도 극대화해야"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갖가지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정부 정책도 연일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와 국민들을 겨냥한 이들 제품과 서비스, 정책이 정말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파이낸스는 기존 사용 후기식 제품 비교에서 벗어나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새로운 형태의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의 [그래서요?] 시리즈를 통해 제품.서비스.정책의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합니다.<편집자주>

사진=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오는 2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증권시장을 비롯해 재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뜨거운 관심이 보이고 있습니다.

운용자산 규모만 635조원에 달하는 데다 국내 증시의 약 7%를 차지하는 ‘큰손’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경우 각 기업과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노후자산을 맡긴 국민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 야당과 재계 등은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가 우선이라며 자칫 ‘정권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데요.

반면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번에 도입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로드맵이 너무 미진하다며 오너의 전횡 등을 막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립성 확보 미비…기업 경영에 부담 줄 수도”
보건복지부는 17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를 열었다.(사진=연합뉴스)

스튜어드란 본래 집사라는 의미인데요.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적극적으로 투자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는 것은 노후자산을 맡긴 국민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뜻이 되죠.

개별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결국 해당 기관투자자가 투자한 종목의 기업가치를 극대화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란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배당, 사업 방향 결정, 이사회 구성 등 각종 경영 사안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고요. 현재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여개 국가가 운용 중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12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고요. 지난해부터 한국투신운용, KB자산운용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운용 중입니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최초로 도입한 기관투자자는 아니지만 워낙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7%)이 높은 대형 투자자란 점에서 더 관심도가 높은데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 가진 상장 기업은 106곳이나 됩니다. 이는 전년도의 87곳보다 21.84% 늘어난 숫자입니다.

그러다보니 야당과 재계 및 일부 학계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에 국민연금의 독립성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자칫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거나 조종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월에 진행됐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공모에서 청와대의 외압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런 염려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 CIO에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발 과정에서 이중국적과 병역 문제가 불거진 데다 청와대 외압 논란이 제기돼 결국 중도 낙마해야 했습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앞서 CIO의 사실상 내정과 중도 낙마 등 처리 과정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연금의 인사에 개입했다”며 독립성 확보를 주문했습니다.

재계 역시 "국민연금 지배구조상 정부와 정치권의 외압이 작동할 개연성이 크다"며 국민연금 독립성 강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우용 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에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먼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큰 논란이 벌어졌음에도 아직까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보장할 지배구조 변경 등 제도적 개선책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될 경우 정치권력의 영향으로 인한 독립성 논란이 거듭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는 자산운용사에 완전히 맡기되 운영사 선정이나 평가를 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에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주총회 전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하기로 결정한 부분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대기업의 최대 주주 혹은 주요 주주란 점,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다른 기관투자자나 개인투자자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의 활용이 자칫 너무 강한 힘의 발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도 내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그 외 자산운용사나 개인투자자들 역시 국민연금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고배당를 요구할 경우 다른 주주들도 합세해 회사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은 주총에 올릴 안건을 고르는 단계에서부터 국민연금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전 교수는 “비경영자의 경영참여를 논하려면 먼저 경영권자가 충분히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헤지펀드로부터 회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습니다.

◇“오너 전횡 막으려면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해야”

반면 현재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로드맵이 너무 미진하기에 더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기업 오너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활약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잡았는데요.

올해는 우선 배당 관련 주주활동을 개선하고 내년에 이사회 구성이나 운영에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어 2020년부터는 문제가 있는 기업에 공개서한을 발송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사외이사 혹은 감사 후보를 추천, 의결권 위임장 대결, 주주총회 소집 요구 등 경영권 참여 주주활동은 빠졌습니다. 이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부정적인 재계의 입장을 반영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 기업인권네트워크 등 여러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의 역할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훼손될 때 경영참여 미해당 주주권 행사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는데요. 특히 삼성그룹, 대한항공, 이사아나항공 등 재벌 오너 일가들의 전횡과 불법을 막고 장기적인 기업가치 향상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 등은 전형적인 오너의 전횡에 의해 회사가 큰 피해을 입은 사안”이라고 예를 들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기내식이 제때에 확보되지 않으면서 지난 1~4일 국제선 100편이 1시간 이상 지연 출발하는 사태를 빚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이 그간 기내식을 문제없이 공급해온 LSG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은 LSG가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제기됐었습니다.

반면 새롭게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은 게이트고메코리아(GGK)는 금호홀딩스의 BW 1600억원어치를 무이자 조건으로 인수했습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 시민단체들은 아울러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중점 관리사안에 인권, 노동, 기후 등의 이슈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요새 불거진 대한항공의 ‘물벼락 갑질’,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갑질’ 등은 대표적인 인권 및 노동 사안이라는 지적입니다.

또한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회계부정이나 심각한 공시위반 등 투자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도 중점관리 사안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습니다.

민간 의결권 자문회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재계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건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며 “국민연금이 경영권 참여 주주활동까지 할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아야 기업이 비공개 대화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및 운용에 대해 각계의 관심도 크고 요구하는 바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노후자산을 맡긴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겠죠.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이 움직이기를 기대합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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