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요?] 삼성전자 액면분할, 주주가치 높였나요

실적 우려에 개인 투매·공매도 대상까지 황제주의 '굴욕'
액분과정서 주주소통 미흡…"의사결정 투명성·독립성 의심"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갖가지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정부 정책도 연일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와 국민들을 겨냥한 이들 제품과 서비스, 정책이 정말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파이낸스는 기존 사용후기식 제품 비교에서 벗어나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새로운 형태의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의 [그래서요?] 시리즈를 통해 제품·서비스·정책의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 서초사옥


황제주 삼성전자가 50대1 액면분할로 국민주로 탈바꿈한지 두 달이 지난 현재 주가 하락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마트폰 등 반도체 외 부문의 부진과 반도체 경기 우려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동종 업계인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상승했는데요. 이유가 단순히 실적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액면분할 개장 첫날 5만4000원 가까이 올랐다가 7월11일 현재 4만5000원대까지 밀렸는데요. 액면분할이 독(毒)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장미빛 전망을 너무 맹신한 결과일까요.  증권사와 삼성전자의 말을 믿고 투자를 결심한 개인 투자자들의 상심은 커지고 있습니다.

◇ 실적 우려에 황제주 추락…액면분할은 죄없나

삼성전자는 지난 5월4일 50대1 액면분할을 진행했습니다. 주가가 250만원대에서 5만원대로 떨어지게 되고 유통 주식수도 50배 증가하는 것입니다.

주가는 액면분할 이후 첫 거래일 5만1900원에서 7월11일 장마감 기준 4만6000원까지 하락했고, 증권사들의 평균 목표주가와 차이를 의미하는 괴리도도 50% 이상 벌어졌습니다.

삼성 측의 의도대로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모으는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액면분할로 유입된 개인투자자보다 유출된 외국인 투자자가 더 많았습니다. 실적과 전망에 대한 우려로 기관과 외국인이 동반매도에 나서며 주가는 속절 없이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현재 주가는 최근 1년 기간중 최저 수준으로, 지난 2월 글로벌 증시 급락때 기록했던 저점과 비슷합니다. 작년 11월 기록한 5만7519원(환산 287만6000원)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떨어진 셈입니다.

액면분할 이후 6월까지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삼성전자의 5월4일부터 6월 중반까지 일평균 거래량은 1669만2507주로 액면분할 전의 65배로 늘었습니다. 이중 개인 거래량은 55배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5월4일부터 7월2일까지 기관투자자가들은 2조3040억원어치를 순수하게 팔아치웠고, 외국인도 3055억원 순매도했습니다.

상황을 보면 개인투자자만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을 호재로 인식해 폭풍매수했고 외국인과 기관이 이를 차익실현에 이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위 개인투자자만 호구가 됐다는 얘기인데요.

황제주였던 삼성전자가 개미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더욱이 삼성전자 액면분할 이후 개미들에게 매수를 강력 추천했던 증권사들이 늘어난 거래량에 짭짤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힙니다. 개인투자자 거래량이 늘면서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익으로 배를 불리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삼성전자의 부진을 삼성전자 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와 신흥국 약세, 실적 우려 등이 겹친 탓이 있습니다. 특히 달러 강세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6월까지 4개월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는데요. 국내 주식 중 비중이 큰 IT 업종을 중심으로 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이유로만 설명하기엔 삼성전자의 낙폭이 너무 큰데요.  5월4일 5만1900에서 7월11일 4만6000원까지 무려 11.3%(5900원)나 떨어졌습니다. 동종업계인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8만3000에서 8만6800원으로 오히려 4.6% 상승했으니까요. 같은 기간 코스피 역시 하락률인 7.3%보다도 훨씬 큽니다.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공매도입니다.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이후 공매도가 크게 늘었습니다.

공매도는 '없는 것을 판다'라는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을 말하는데요. 약세장이 예상되는 경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 후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공매도량이 가장 많은 종목으로 기록됐습니다. 액면분할 이전까지는 공매도 순위 100위 안에서도 이름 찾기 어려웠던 삼성전자인데요 기관 등 세력의 먹잇감이 됐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요.

삼성전자 주가 추이. 자료=네이버 캡쳐


◇ 액면분할이 정말 주주 가치 제고 맞나요?

액면분할을 결정할 당시 낙관적인 예상이 많았습니다. 250만원정도 였던 삼성전자 주가가 300만원 이상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니까요. 1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올해 실적 기대치가 높아져있었고, 1주당 가격이 낮아지면 개인 투자자도 유입돼 수급이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또 삼성전자는 너무 비싼 주식 가격 때문에 삼성전자에 투자하지 못하는 소액주주를 위한 결정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면엔 속된말로 개인 투자자들을 방패로 삼겠다는 의도도 있었을텐데요. 개인 투자자 비중을 늘려서 외국인 주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막으면서 지배구조 안정화도 노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현재 외국인이 갖고 있는 비율은 약 52% 내외인데요. 소액주주가 늘어나면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주가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액면분할을 왜했나 하는 의문까지 드는데요. 액면분할로 생각지도 않았던 공매도에 표적이 됐고, 개인들의 투매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미빛 전망으로 액면분할을 속단한 삼성전자의 결정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은 삼성전자 등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 분할 결정 과정에서 주주소통 및 투자 정보 제공은 해외 글로벌 기업 수준에 크게 못미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최대 기업의 갑작스러운 주식분할 발표에 따라 해당 주식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유입 및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지만 주식분할 이후 해당 종목의 주가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보도 내용을 믿고 주식을 매입한 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낳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위 팡(FANG)이라고 불리우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넷플렉스, 구글 등이 주식분할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 이전에 활발한 주주소통을 했고, 주주총회 결정을 위해 충분한 의안정보를 제공했다는 점과 대조적이라는 건데요.

김 연구위원은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분할 결정이 주주 소통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주식분할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독립성에 의심이 드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미국 주요 상장법인의 경우 주식분할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산하의 특별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결정되는 반면 국내 상장법인의 경우 주식분할 결정을 논의, 자문하는 공식적인 실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성전자가 투자자들에게 알려야할 중요 공시사항을 누락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23%를 매도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삼성 측이 '중요 위험요소(material risk factor)'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5월30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삼성전자 주식 일부인 0.45%(2700만주)를 장외 블록딜로 매각하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3.51% 급락하기도 했으니까요.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주주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서 외국과 달리 매우 소극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번 액면분할 결정 역시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인 경영진의 빠른 결단 및 실행이 되레 독이 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시스템적 변수 해결 어렵지만…주주 보답 방법은 결국 '실적' 뿐

반도체 경기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서서히 나오고 있어서 추락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만, 글을 쓰는 기자는 삼성전자가 다시 원위치를 찾을 것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증권사들은 3분기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실적으로 사상 최대 실적 달성과 주가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가격은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 OLED 물량 증가 등으로 3분기 실적 개선 모멘텀이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3년 만에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등 상황은 긍정적입니다.

지난 6월20일 무디스는 삼성전자의 선순위 무담보 채권등급을 'A1'에서 'Aa3'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기술력과 영업안정성, 탄탄한 현금 흐름, 대규모 설비 투자등이 반영됐다고 무디스는 설명했습니다.

또 무디스는 2~3년간 다수 사업 부문에서 우월한 시장지위를 유지할 것이란 평가하면서 삼성전자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봤습니다.

무디스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중국 업체와 상당한 기술력 차이를 보이고 있고, 도체 산업의 매우 높은 진입장벽 등을 이유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삼성전자에 의미 있는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중국업체 등과의 반도체 경쟁에서 초격차 전략을 유지한다는 계획입니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선두를 달리는 삼성전자는 5세대 3차원(3D) V낸드 양산에 돌입하며, 경쟁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다시 한번 벌리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몇가지 변수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우려가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정부의 삼성 지배구조 개편 압력은 삼성전자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등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는데요.

최근 인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채찍을 거둬들일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은 당장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가 얼마나 밀려들어올지 나비효과를 예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개인 투자자의 여력은 한계가 있는데요.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이 더 이상 투자를 늘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기업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시그널을 준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삼성전자가 결국은 실적이라는 실력만으로 '주주가치 제고'라는 숙제에 보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장영일 기자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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