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연금제도, 소외계층 위해 보험료 매칭방안 고려해야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고대부터 어느 민족이나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실험대에 올라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을 정도로 장수는 일류의 염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인 소득 증가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장수리스크(Longevity Risk)에 직면하고 있다. 장수리스크는 예상보다 오래 생존함에 따라 개별 경제주체들 직면하는 경제적 문제로 정의된다. 장수리스크를 관리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금제도다.

산업화 이후 부양 공동체 역할을 해오던 대가족제도의 해체로 노인부양문제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주요국들은 정부가 직접 공적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구고령화에 직면했거나 직면할 것으로 예상한 주요국은 사적연금을 활성화해 개인의 자조 노력으로 노후소득을 마련하도록 유인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경험 중인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인하했다. 연금수급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한편 2005년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사적연금(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 왔다.

시장 기능 중심의 사적연금을 활성화하자 세제 혜택을 만끽할 수 있는 계층 중심으로 가입이 이뤄질 뿐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은 사적연금에서 소외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요국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차별화된 사적연금제도를 도입하거나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뉴질랜드, 독일, 호주, 미국 등은 저소득층이 사적연금에 보험료를 납입 시 근로자의 사적연금 계좌에 매칭보험료를 납입해주는 더욱 적극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노후소득보장정책을 강화해 왔다. 저소득층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 노인빈곤율을 경감시키기 위한 주요국의 적극적인 보험료 매칭제도는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50%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대기업 근로자와 고소득자 중심으로 사적연금이 성장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속도로 인구가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사적연금은 분명 노후빈곤의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하며, 가장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재정지출에 대한 반감과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빈곤한 노인을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기보다는 정부 지출을 활용해 개인의 자조 노력을 유인하는 방안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정부재정과 경제성장에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악화된 소득 불평등의 원인으로 빈곤한 노인의 증가가 한몫을 했다는 정부가 주장이 맞는다면 더욱 취약계층의 노후소득보장정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중 어느 사적연금을 활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제안하자면 퇴직연금제도의 IRP(개인형 퇴직연금)를 활용해 저소득층의 노후소득보장정책을 강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으로 구성된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는 각 층마다 나름대로 기능과 목적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은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퇴직연금은 기본적인 생활보장을 위해, 그리고 개인연금은 여유로운 생활보장을 위해 도입되었다. 뿐만 아니라 각 연금제도의 기능에 따라 적용되는 제도적 완성도나 강제성도 상이하다. 같은 사적연금이더라도 퇴직연금은 가입이 강제된 준 공적연금인 반면 개인연금은 가입 자체가 임의제도이다. 

때문에 개인연금의 경우 향후 적립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할 때 또는 중도에 해지할 때 퇴직연금만큼의 강력한 제재조항 또는 유인체계를 마련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제도에는 DB(확정급여)형 및 DC(확정기여)형뿐만 아니라 개인연금과 유사하게 운영할 수 있는 IRP가 존재하기 때문에 보험료 매칭제도를 도입할 것이라면 그 대상은 퇴직연금제도, 그중에서도 IRP가 가장 바람직하다.

빈곤한 노인을 빈곤하지 않도록 재정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빈곤한 노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정부의 재정부담과 국민의 세금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접근일 것이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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