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요?] 단기금융업 인가 지연…혁신 성장 '헛구호'

초대형 IB 중 인가받은 곳은 두 곳뿐…미래에셋·삼성·KB증권 기약 없어
모험자본 육성 위해 발행어음 필수…"자격 갖춘 곳은 빨리 인가해줘야"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초대형 IB로 지정된 5개 증권사. 그러나 이 중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아직까지 한국투자증권 한 곳뿐이다.(사진=연합뉴스)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갖가지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정부 정책도 연일 발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와 국민들을 겨냥한 이들 제품과 서비스, 정책이 정말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파이낸스는 기존 사용후기식 제품 비교에서 벗어나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새로운 형태의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의 [그래서요?] 시리즈를 통해 제품 ·서비스 ·정책의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합니다.<편집자주>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1년 7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지난 2016년 8월에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해 구체적인 혜택을 제시했는데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대형 IB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고 4조원 이상인 초대형 IB에는 발행어음 업무 영위를 허용해주는 것이 골자입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는 새로운 건전성 규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Ⅱ)가 적용돼 규제 부담이 한결 덜어집니다. 기업 신용공여 한도 증액,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 및 중개업무 등도 허용됩니다. 이는 증권사들의 기업금융 활성화를 꾀해 모험자본을 육성하려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또 초대형 IB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증권사의 자금조달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거죠.

아울러 금융위는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8조원 이상으로 늘릴 경우 종합투자계좌(IMA)의 판매까지 허용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안이 발표된지 2년 가까이 되도록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초대형 IB는 한국투자증권, 단 한 곳뿐입니다. 종합금융 면허를 지닌 메리츠종금증권과 곧 인가가 나올 예정인 NH투자증권까지 포함해도 발행어음 업무 영위가 가능한 증권사는 세 곳에 불과한 거죠.

특히 발행어음은 초대형 IB 육성을 위해 핵심적인 제도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격이 갖춰진 곳에 대해서는 서둘러 인가를 해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배구조 문제에 발목 잡힌 단기금융업 인가

현재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신하금융투자 등 총 일곱 곳입니다.

또 지난해 11월 자기자본 4조원을 넘긴 미래에셋대우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투증권 등 다섯 곳이 초대형 IB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이 때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한투증권 한 곳뿐입니다.

초대형 IB들은 모두 발행어음 업무 영위를 원했지만 금융당국의 심사가 지연돼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금융당국은 “심사 중”이라고만 전하며 명확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만 결국 지배구조 문제가 크다는 것이 주된 관측입니다. 

실제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단기금융업 인가가 늦어지는 것은 각 증권사마다 결격 사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NH투자증권의 경우 지주사인 NH농협금융지주에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용환 전 농협지주 회장 등 경영진이 채용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은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더불어 주요 주주로 참여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인허가 특혜 논란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나마 NH투자증권은 심사 절차는 중단되지 않아 어렵게나마 지난 23일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단기금융업 인가 안이 통과됐습니다. 이제 오는 30일 열리는 금융위 정례회의까지 무사히 넘기면 다음달부터 발행어음 업무를 영위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그 외 초대형 IB인 미래에셋대우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세 곳은 심사 절차가 중단돼 언제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란 점이 문제시됐습니다.

우선 그룹 계열사들이 박현주 회장과 부인 등 오너 일가가 92%의 지분을 보유한 미래에셋컨설팅에 부동산 관리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가 제기됐는데요. 공정위는 미래에셋컨설팅 매출액의 대부분이 계열사 거래를 통해 발생했다며 만약 가격 산정 등에까지 특혜가 있다면 일감 몰아주기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정위는 미래에셋그룹의 지배구조도 후진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캐피탈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도 단기 차입금 조달, 지분 조정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지주사 규제를 피해왔다는 겁니다.

이런 탓에 미래에셋대우증권은 올해초 자기자본 8조원을 돌파했지만 IMA 판매는 커녕 단기금융업 인가 조차 받기 힘든 상황입니다. 

삼성증권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판 중이란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인데요.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나왔고 현재 3심이 진행 중입니다.

금융당국은 대법원에서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단기금융업 관련 심사를 진행하지 않을 요량입니다. 게다가 올해초 삼성증권에서 무려 112조원어치의 주식이 착오 입고된 배당 오류 사태까지 터지면서 당분간 발행어음 업무 영위는 힘들어 보입니다.

KB증권은 스스로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옛 현대증권 시절 대주주 신용공여 금지 위반으로 제재 조치를 받은 게 문제시되자 스스로 물러난 것입니다.

다만 해당 제재의 시한은 다음달말까지라 제재가 종료되는 대로 즉시 심사를 재신청할 예정입니다. 잘 풀리면 연내 단기금융업 인가가 가능해 보입니다.

◇“자본시장 발전은 곧 혁신성장”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혁신성장 지원을 위해 초대형 IB에 대해 단기금융업 인가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단기금융업 인가가 지연되면서 증권사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발행어음은 단지 자본시장의 발전만이 아니라 모험자본 육성 및 이를 통한 혁신기업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라면서 “자격을 갖춘 곳은 빨리 인가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도 "초대형 IB의 발행어음 업무 영위는 혁신성장 차원에서 꼭 필요한 사안"이라며 "빨리 되길 바란다는 업계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의 90% 이상을 은행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안정적인 경영을 최우선시하는 은행이 대출만 선호하고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중소기업 성장 지원을 위해 추진한 기술금융과 관계형금융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합니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은행의 기술금융 잔액은 83조3070억원인데 이 중 97.95%에 달했습니다. 기술기반 투자는 2.05%에 불과합니다. 관계형금융 역시 대출 비중이 99%가 넘으며 지분투자는 0.66%뿐입니다.

대출은 만기가 정해져 있기에 사업 실적과 관계없이 기업은 매달 꾸준히 원리금을 갚아야 합니다. 또 은행이 언제든 만기 연장을 거절할 수 있기에 기업 경영 입장에서 무척 불안하다고 할 수 있죠.

반면 투자로 받은 돈은 갚아야할 의무가 없으며 실적이 향상된 뒤 배당 등으로 상환하면 됩니다. 만기의 공포도 사라지므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등 담보가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힘듭니다. 지난해말 기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가운데 담보대출 비중은 71.2%에 달했습니다. 소위 혁신기업, 벤처기업 등 실적이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도 은행은 꺼립니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의 육성이 중요합니다. 정부도 이를 잘 알기에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 등 각종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모험자본 육성을 위해 증권사의 자금조달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자금조달능력 확대에 발행어음만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한투증권이 출시한 `퍼스트 발행어음`의 1호 고객으로 가입하고 있다. 한투증권은 어음 발행을 통해 이번달 중순까지 총 2조원의 자금을 모집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한투증권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뒤 발행어음으로 시장에서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끌어 모았습니다.

지난해 11월 내놓은 첫 상품 '퍼스트 발행어음'은 출시 이틀 만에 목표액인 5000억원이 조기 판매 마감되는 등 뜨거운 인기를 자랑했는데요. 하루만 맡겨도 연리 기준 1.55%, 1년 만기 시 2.3%의 이자율을 적용하는 등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한 것이 성공요인으로 꼽힙니다.

한투증권은 이미 이번달 중순까지 발행어음으로 2조원을 조달했고요. 올해 안에 4조원을 채운 뒤 2020년까지 총 8조원의 자금을 모집한다는 목표입니다.

NH투자증권도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는 즉시 어음을 발행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방침입니다. 올해 안에 총 1조5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모인 돈은 주로 IB 사업과 중소기업 지원 등에 쓰일 것”이라며 “결국 혁신성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 지원, 생산적금융 확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서라도 다른 초대형 IB에도 빠른 단기금융업 인가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일단 KB증권은 인가 신청을 철회하게 된 요인인, 옛 현대증권 시절 받은 제재 조치의 시한이 완료되는 대로 즉시 심사를 재개하는 게 옳아 보입니다. KB증권이 직접 받은 제재도 아니고 KB금융지주에 인수되기 전의 문제니 더 이상 끌 까닭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금융당국이 서두르면 연내 단기금융업 인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삼성증권의 경우 직접 지배하는 대주주도 아닌데 그룹의 사실상 오너란 이유로 이 부회장의 재판과 연계하는 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현재 삼성증권의 최대주주는 29.39%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이며 이 부회장은 지분이 전혀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증권의 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 0.06%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은 공정위 조사와 연루됐으니 지연될 수밖에 없겠죠. 특히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이 모든 의혹을 털어낸 뒤 깨끗한 입장에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기를 기대합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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