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큰 별 LG그룹 구본무 회장 별세… LG 성장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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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의 '3세대 총수직'을 23년간 수행해온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 관계자는 이날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는 다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으며,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하면서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리스크' 없었던 고인, 조용한 장례식 주문…경제계, 한 목소리로 애도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부터 가족과 회사 임원들에게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으나 가족·친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조문을 받지 않았으며, 조화도 정중히 사절했다고 한다.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격식을 꺼리고 소탈한 생활을 원했던 고인이 "내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 달라",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의 당부를 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탈함의 영향 때문인지 LG그룹은 사주 일가의 갑질 행태 등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날 경제계는 고인의 생전 공로를 기리고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구 회장은 미래를 위한 도전정신으로 전자·화학·통신 산업을 육성했고, 정도경영을 통해 고객에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경제계는 구 회장의 타계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한국경제의 번영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논평을 통해 "구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에 그 슬픔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고 추모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인 구 회장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고인은 대혁신을 통해 화학·전자·통신 등 산업을 세계일류의 반열에 올려놓은 선도적인 기업가였고, 항상 정직하고 공정한 길을 걸어 늘 우리 기업인들의 모범이 됐다"고 추모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무역업계는 한국 경제계의 큰 별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LG 이끈 고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 마지막 꿈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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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전 회장과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 이어 LG전자와 LG화학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을 키워낸 고 구본무 회장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끈기와 결단의 리더, 야구를 사랑한 기업인, 양자를 후계자로 키운 총수 등등.

그는 1975년 ㈜럭키에 입사한 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전반의 흐름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1989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돼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며 경제 및 경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거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대외 활동의 보폭을 넓혔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만인 1995년 그룹의 회장직을 승계받았다. 부친인 구자경 회장보다는 5년 늦은 50세에 그룹경영을 넘겨받아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던 고인은 그룹 기술자문위원회와 해외사업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장 자격으로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매사 최고를 추구해왔다.

그 결과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야구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함께 '탐조(探鳥)'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고인은 소탈함 속에 친근감 있는 인물로 여겨졌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픔 속에서도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하기도 했다.

임정빈 선임기자 jbl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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