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급여는 의료인에게도 독(毒)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국내 보건의료체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의료비는 적게 지출하면서 건강성과는 좋은 편이다. 둘째 건강보험 보험료가 저렴한 편이다. 셋째 전체 의료비 지출 중 사회보험료 및 세금과 같은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 넷째 의료비 증가율과 공공재원 증가율이 매우 높다.

즉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그동안 매우 효율적이었으나 현재는 급증하는 의료비로 효율성이 낮아지는 동시에 재정 투입을 확대해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을 악화시키는 중심에는 비급여의료가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케어'의 핵심이다.

하지만 문제가 공적 건강보험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의료보험 역시 비급여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다.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때문에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은 100%를 상회하지만 정부의 규제와 소비자의 반감 때문에 보험료는 충분히 인상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의 보장률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협 요인이 됐다.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궁극적 이유는 수입 감소일 것이다. 그동안 방대한 비급여의료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해 왔는데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니 의료계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 더군다나 급여의료의 수가가 높지 않으니 비급여가 없는 세상은 의료계에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비급여는 의료계에도 약이 아닌 독일수도 있다. 의사들의 수입은 분명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개원의나 의료기관은 값비싼 의료장비에 투자해야 한다. OECD 국가의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영세한 반면 고가의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왜 값비싼 의료장비에 투자해야 할까? 의료법은 의료기관을 크게 의원급 의료기관, 병원급 의료기관, 그리고 상급종합병원으로 구분한다. 의원급은 외래환자를, 병원급은 입원환자를, 그리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네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동일한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는 것이 국내 의료전달체계의 현실이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가 의료장비에 투자해야 하고 비급여를 더 많이 활용하고 과잉진료를 해야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다. 양심적인 의료인은 폐업하기 십상이다. 의료인은 본인이 꿈꾸어왔던 전공이 아닌 돈이 되는 전공에 몰린다. 쉽게 말해 비급여 위주로 진료가 이루어지는 전공들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 온 경제주체이다. 하지만 의료인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의사들이 비급여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해 왔지만 결국 비급여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

급여의료의 수가가 낮아서일 수도 있고 체급이 맞지 않는 의료기관 간 무한경쟁을 허용한 정부의 잘못일 수도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경제적 체력이 더 이상 비급여 문제를 방관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했고 '문재인 케어'의 시행 여부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비급여의 급여화'는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개입해야 할 시장을 과거 정부가 지나치게 방관해 온 것이다.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가장 큰 시장이 바로 의료시장이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을 위해 의료시장에 적극 개입한다.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로 존경받고 과잉진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정 수가를 받아 정직한 진료를 수행하며, 돈이 되는 전공이 아닌 보람이 되는 전공을 찾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렇게 의료인이 꿈꾸는 세상은 비급여가 존재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비급여가 오히려 의료인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처럼 소통과 의료를 중단하려는 행위는 결코 의료인들이 꿈꾸는 세상의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

정부 역시 당장의 인기만을 의식해 보험료 인상 없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포퓰리즘(Populism)은 중단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 없이 보장률을 높이는 방법은 수가를 낮추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옳은 일을 하는데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면 국민들을 설득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국민만 희생할 수는 없다. 의료계도 터무니없이 낮은 수가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으나 거품 가득한 비급여까지 포함한 수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도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와 후세대를 위해 더 많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희생을 치르는 만큼 의료계도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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