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증권사 매도보고서 비중 '국내 0.2% vs 외국계 14%'

매도 등 부정적 보고서 내면 출입 금지·자료 제공 거부
상장사 격한 반발에 두 손 드는 증권사·애널리스트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기업의 주가 전망, 산업별 전망 등을 다루는 증권사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너무 긍정적인 매수 보고서만 넘쳐흐르고 매도 보고서 등 부정적인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의심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실제로 32개 국내 증권사의 지난해 보고서 중 매도 보고서 비율은 겨우 0.2%(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불과했다. KB증권, NH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은 매도 보고서가 아예 단 한 건도 없었다.

반면 매수 보고서 비중은 무려 88%로 압도적이었다.

이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증권사와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해 외국계 증권사 15곳의 매도 보고서 비율은 14%로 국내 증권사의 70배나 됐다. 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은 외국계 증권사는 노무라증권과 초상증권 한국지사 2곳뿐이었다.

이들의 매수 보고서 비중은 56%로 국내 증권사보다 32%포인트 낮았다.

금융당국이 매도 보고서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 2015년 5월 '매도 보고서 비율 공시제'를 도입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지난 2016년의 국내 증권사 매도 보고서 비율 역시 0.2%에 그쳤다.

이러니 자연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항상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는다”며 “주가가 늘 오를 리가 없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는 일체 안 하니 도무지 믿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애널리스트들이 자기 담당 분야 기업과의 친분 때문에 좋은 이야기만 써주는 것 아니냐”며 모종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개개인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따져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매수 보고서만 넘쳐흐르고 매도 보고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현상의 주된 원인은 상장사의 ‘갑질’이다.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만약 한 애널리스트가 모 상장사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쓸 경우 당장 출입 금지령이 떨어진다. 나아가 그 애널리스트에 대한 자료 제공까지 거부한다.

보고서를 쓰기 위해 상장사 기업소개(IR) 부문 등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제공받아야 하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애널리스트 A씨는 “이는 애널리스트로서 생명이 끊기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아무리 정의감에 불탄다 해도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매도 보고서를 쓰기는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애널리스트 B씨는 “목표주가만 내려도 상장사 측에서는 불쾌감을 표한다”며 “부정적인 보고서는 아예 쓰지 마라는 요구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증권사의 유약한 대처도 상장사의 갑질을 부추기고 있다. 상장사의 불합리한 반발에 맞서 싸우기보다 해당 애널리스트를 교체하는 식으로 대응하곤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증권사가 상장사에게 즉시 두 손을 드니 애널리스트로서는 손 쓸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규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보고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애널리스트의 눈치 보기가 없도록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상장사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상장사 IR 관계자는 “증권사 보고서 하나에 기업 주가가 춤을 춘다”며 “우리는 보고서의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점을 지적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갑질이 계속되는 한 애널리스트의 자유는 제한되고 국내 증권사에서 매도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사회 곳곳에서 적폐청산이 화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대한 상장사의 갑질도 해소돼야 할, 오랜 적폐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보다 품질 높은 보고서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매수 보고서든 매도 보고서든 적시에 정확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증권사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에 따라 매매가 이뤄질 경우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며 “국내 증권사에는 이런 유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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