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강남 집값 폭등…은행만 다그칠 일 아니다

자사고 폐지·다주택자 규제·재건축 연한 상향 등 복합적 작용…은행 대출 옥죄는 걸로는 해결 안 돼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지난달 30일 열린 임원회의에서 최흥식 금감원장은 “강남권 집값 폭등세가 심상치 않다”며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 은행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엄정한 제재 조치를 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권 집값은 무서운 기세로 뛰어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월 강남구 집값은 전월 대비 2.72% 올라 전국 평균 상승률(0.14%)의 약 20배에 달했다. 송파구는 2.45%, 서초구는 1.8%씩 각각 뛰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아파트 중에 작년말에 비해 2억~3억원 가량 안 오른 곳이 없다”며 “몇 달 새 5억원 이상 뛴 아파트도 여럿”이라고 전했다. 그는 “강남 집값의 폭등세가 주변 지역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1월 양천구 집값은 전월 대비 1.52% 상승했다. 과천과 분당의 집값도 들썩거리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정부 입장에서는 큰 악재다. 8.2부동산 대책,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 여러 정책들을 쏟아내면서 집값 상승세를 잡으려 했으나 기대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을 다그치는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은행은 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LTV, DTI 등은 금감원장이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잘 지키고 있으며 집단대출하지 말라고 해서 집단대출에서 손을 뗐다. 가계대출이 유난히 많은 은행에 대해 현장검사를 실시하겠다는 으름장은 이미 작년부터 여러 번 나왔다.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신 DTI’가 도입됐고 곧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도 시행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강남권 집값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강남권 집값 폭등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이서 금융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의 주 원인으로 △특수목적고 및 자율형사립고 폐지 △다주택자 규제 △재건축 연한 상향조정 등을 꼽고 있다.

외국어고, 국제고, 자사고 등이 사실상 폐지 절차에 돌입하면서 강남 8학군이 재조명받고 있다. 맹모삼천지교를 추종하는 국내 학부모들 사이에서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폭발해 집값 상승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또 다주택자 대상 부동산규제 강화 및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도 강남권 집값에 불을 질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요새 다주택자들 사이에서 소유한 집을 정리하고 강남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하려는 흐름이 유행 중”이라며 “이에 따라 자연히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집값 폭등을 우려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현재 준공 후 30년인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발언도 역효과를 일으켰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김 장관의 발언 후 강남권 아파트 소유주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며 시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식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 발언 때문에 강남권 신축 아파트 가격이 더 뛰어올랐다”며 “이런 경향이 낡은 아파트 가격까지 떠받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강남권 아파트 소유주들은 집을 팔 생각이 없어 시장에 매물이 증발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수요가 공급을 훨씬 능가하니 집값이 뛸 수밖에 없다”며 “강남권 아파트를 못 구한 사람들이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강남 근처 집값까지 상승 추세”라고 전했다.

이처럼 강남권 집값 폭등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사안이라 은행을 다그쳐봤자 실효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핵심은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다는 것이니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여야 한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80년대 지어진 강남권 아파트의 재건축을 차례로 실시하고 강남 근처의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대대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급을 대폭 늘리라는 얘기다. 다른 한편에서는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문제를 푸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한곳을 누르면 다른 한곳이 부풀어 오른다. 정부의 정책을 시장이 호락호락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땅에 대한 애착이 그 어느나라보다 강한데다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제부처 수장들의 섣부른 발언도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당장 급하게 시장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보다는, 차분하게 한발 물러서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냉철한 분석과 정확한 현실 진단 만이 해법이다.  시각도 보다 복잡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은행 탓일 것이라는 단편적인 발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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