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불로소득에 열광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까?

거래 금지 방침에 가상화폐 투자자들 분노…부동산투기 ‘NO’·가상화폐 ‘YES’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돈은 땀 흘려 일해서 버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사회주의적인 마인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은 이 격언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근간이다.

국부론을 집필해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도 불로소득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주는 자신이 씨 뿌리지 않는 곳에서 수확한다”며 타인의 노동에 기대는 지대를 비판했다.

현대의 경제학자들 역시 “자본이 스스로 자본을 재생산하는 불로소득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이 사익을 추구할 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자연스럽게 국가와 사회에도 이로운 결과를 도출한다”는 이론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여기서 사익이란 불로소득이 아니라 '근로소득'을 뜻한다. 공장의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자도 시장 조사, 신상품 개발, 비용 효율화 등에 노력하는 행위는 엄연히 노동에 속한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주식 투기 등 불로소득은 이와 다르다. 몇몇 자본가와 투기꾼이 결탁해 작전 모의를 통해 투기를 일삼을 경우 시장은 왜곡되고 사회는 혼탁해진다.

‘튤립 버블’, ‘미시시피 버블’ 등이 증명하듯이 투기의 끝에는 사회 전체의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신대륙에서 실어온 금은 덕에 흥청망청거리던 스페인이 보여주듯 사람들이 불로소득에 맛을 들이면 노동 의욕이 떨어져 사회는 썩고 병들어간다.

따라서 정부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주식시장을 교란시키려는 작전 세력에 대해 엄격히 조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 과열과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것에 일반 시민들 모두 찬성했다.

그런데 규제 대상이 부동산에서 가상화폐로 바뀌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거래소도 모두 폐쇄할 것”이란 방침을 밝히자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해당 기사에는 비판을 넘어 욕설 댓글까지 수두룩하게 달렸다.

놀라운 부분은 단지 자본가나 투기꾼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정부의 강력한 규제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서민이 돈 버는 게 화가 나냐?”는 댓글까지 보인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불로소득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부동산은 절차가 복잡하고 자본이 많이 필요해 접근성이 나쁘니까, 즉 내가 할 수 없으니까 부동산 투기에 반대하고 가상화폐는 절차도 간단하고 소자본으로 가능하니까 찬성하는 걸까?

“투기는 나쁘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도 “쉽게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은 사실 피곤한 일이긴 하다”며 “서민들도 그보다는 눈앞에서 수십 배씩 오르는 가상화폐를 통해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듯 하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1년 사이 그 가치가 수십 배나 오른다는 것은 반대로 수십 배나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하락장은 상승장보다 훨씬 더 가파를 것이다. 1636년 한 해에만 60배 가까이 치솟아 암스테르담의 고급 주택과 맞먹던 튤립 구근 한 뿌리 가격이 양파 가격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불로소득에 대한 경계는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건전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설령 거래소 폐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방침은 당연한 조치라고 봐야할 것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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