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가상화폐 시장, 규제만이 능사인가

세계파이낸스 장영일 기자
최근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 규모와 행태들을 보면 가히 광풍으로 불릴만하다.  노량진 공시족이나 중고생들까지도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경제 규모에 비해 가상화폐 거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국제 시세보다 30% 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정상적 상황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가상화폐 시황을 전하는 미국의 '코인마켓캡'은 한국의 가상화폐 거품이 심하다며 통계에서 제외한다고 했을까.

가상화폐 시장이 투기로 비춰지면서 정부는 작년부터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가상계좌 실명확인부터 최근엔 거래소 폐쇄까지 가능하다며 경고하고 있다. 투기적 거래에 대한 책임을 은행으로 돌리면서 은행들에 대한 특별검사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연이은 규제 발표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 가격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투자자들은 가상통화를 결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정부 규제에 빠르게 대응한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책을 마련해도 헛점을 뚫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과열 양상을 진정시키고 투기세력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는데 그쳐야 한다.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해서 가상화폐 거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해외 거래소에서도 충분히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0원인 가상화폐 매매차익에 대한 세금을 적절하게 부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가상화폐 거래소를 겨냥한 해커로부터도 투자자들을 보호해 시장이 성숙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더욱이 왜 한국이 가상화폐에 열광하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

가상화폐는 통화 가치가 은행들의 통화정책에 변동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누구나 화폐를 발행(채굴)할 수 있고 화폐 거래 기록을 국가나 은행이 아닌 개인들이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안타깝게도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가상화폐 투자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부(富)의 대물림을 이겨낼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손쉽게 부를 늘릴 수 있는 복권이나 가상화폐 등에 빠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상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미 가상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미국에서는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상품도 나왔고 자산으로 인정해 세금도 매긴다. 가상화폐를 금과 같은 자산으로 인정하는 국가들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한국은 비트코인 3대 시장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만약 정부가 자생적으로 커진 가상화폐 열기를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꺼트린 것에 대해 훗날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정부의 규제는 투기 억제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며 시장 발전를 저해해서는 안된다.

장영일 기자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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