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개인연금법 부작용 누가 책임지나?

세제체계 다른 연금저축·연금보험·IRP 통합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할 가장 거대한 리스크(Mega-Risk) 중 하나는 단연 장수 리스크(Longevity Risk)일 것이다. 장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불확실한 사망 시점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며, 해결 방안은 결국 연금으로 귀결된다. 연금은 단순히 장수 리스크의 관리 차원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경감에도 효과적일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공적연금제도는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이나,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공적연금제도만으로 국민들의 노후 소득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 역시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통해 공적연금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금융위원회도 사적연금의 사회·경제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연금 자산의 효율적인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개인연금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개인연금법이 오히려 국민들의 노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연금법은 개인연금상품의 종류를 세제적격 연금저축(연금저축)으로 규정하고 투자일임형을 추가하고 있다. 여기에 생명보험회사의 비적격 연금보험(연금보험)과 퇴직연금제도의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자산도 포함할 예정이다.

연금 가입자는 개인연금계좌를 활용해 가입된 연금상품, 기여금의 납입, 적립금 등을 안내받고, 공시된 수익률과 수수료를 비교할 수 있다. 개인연금법은 연금저축, IRP, 그리고 연금보험 자산을 서로 이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세제체계와 태생적 목적이 상이한 노후자산을 동일시하는 순간부터 부작용이 양산될 것으로 생각된다. '연금저축, IRP, 연금저축 모두 동일한 연금상품이 아니겠는가?'란 발상에서 개인연금법이 추진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다층노후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각각의 연금제도는 다른 목적하에 만들어진 제도다. 퇴직연금제도는 표준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사용자가 기여금을 납부하며 가입이 반강제적인 준공적연금제도이며, 연금수령이 기본적으로 적용돼야 할 제도이다.

반면 연금저축은 여유로운 생활 보장을 목표로 가입이 온전히 임의이고 가입자가 모든 보험료를 지불하며, 수령 단계에서도 가입자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저축상품적 성격이 강하다.

퇴직연금제도 중에서도 IRP는 확정급여형 및 확정기여형에 가입한 근로자들이 장기간 축적한 노후자산을 IRP로 집중시키고 그 노후자산을 연금수령으로 연계시켜주는 퇴직연금제도의 결정체이다. IRP자산을 연금저축에 이전하는 순간 연금수령보다는 일시금 또는 분할수령이 활성화돼 국민들의 장수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선호설(Time Preference Theory)에 따르면 경제주체는 미래소비보다는 현재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특별한 제재조치나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노후자산을 일시금으로 수령한 후 조기 소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금보험 역시 연금저축과 자산을 통합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세액공제혜택을 제공하는 연금저축과 달리 연금보험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두 자산을 서로의 계좌에 이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연금보험에는 보장성 보험의 기능이 포함돼 있다. 적립단계에서 사망·장해·치매·중대질병 등을 보장하며 장애 발생 시 보험료 납입을 면제해주는 기능도 존재한다. 보장성보험의 기능이 부가된 상품과 단순 저축적 성격이 강한 상품 간 자산을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연금 개시 이후에도 가입자가 치매와 같은 노후질환에 걸려 조기사망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연금보험은 연금액을 더 많이 지급해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연금보험은 일시납즉시연금보험과 같은 종신연금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연금보험에는 가입자의 사망률이 적용된다. 사망률이 적용되는 보험상품은 손해보험회사에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연금보험이 다른 금융기관이 판매하는 연금저축과 완전히 다른 상품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개인연금법은 연금 가입자가 손쉽게 보다 나은 연금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수익률 및 수수료 등을 비교·공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보장성보험의 기능, 사망률 적용, 최저수익률 보장옵션들이 포함된 연금보험이 개인연금법에 포함되는 순간 수익률 비교 공시는 어려워진다. 수수료 역시 납입보험료에 부과되는지, 적립금에 부과되는지, 초기에 집중적으로 부과되는지 등에 따라 표준화해 비교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익률과 수수료를 공시할 경우 자칫 연금 가입자 또는 잠재 가입자에게 잘못된 선택을 유인하게 된다. 

개인연금법의 기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IRP가 개인연금법에 포함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은 고용노동부에서 잘 이해하고 있고 연금보험이 개인연금법에 포함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은 생보사와 금융위 보험과에서도 충분히 이해돼 개인연금법에 대한 우려는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개인연금법과 같은 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차도 금융위는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5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인연금법을 무리하게 추진한 후 우려했던 부작용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된 법은 많은 행정 비용과 부작용을 양산하며, 그 피해는 모두 우리 국민들에게 귀속된다. IRP와 연금보험 가입자들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수익률과 적립금 등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연금법의 기본 취지를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금저축으로 한정한 개인연금법이 필요해 보인다. 또는 개인연금법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존의 법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개인연금법 중 꼭 필요한 일부 내용을 소화하는 접근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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