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승의 커피人사이트] 라떼아트 세계챔피언 엄성진을 아시나요?

커피 입문한지 12년만에 올해 세계대회에서 정상 '우뚝'
"연습 못지 않게 작품과 관련해 많은 상상 해볼 필요 있어"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6 월드라떼아트챔피언십''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엄성진 바리스타가 팅커벨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WLAC.
올해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6 월드라떼아트챔피언십(WLAC). 

이 대회에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엄성진 바리스타(사진)는 ''팅커벨'', ''천사'', ''백조''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랐다.

특히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더해 20여 차례가 넘는 에칭(etching : 에칭용 가는 펜을 활용한 그리기) 기법이 특징인 팅커벨 등은 엄 바리스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6개의 작품을 10분 내에 완성해야 하는 등 빠듯한 시간 제한에도 불구, 그는 오히려 시연이 끝나기 30초 전 모든 작품을 완성한 후 팝송을 부르며 심사위원과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홈 어드벤티지를 안은 중국 대표를 압도적 점수차(26점)로 따돌렸다. 라떼아트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더해, 커피를 통해 세상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엄 바리스타의 커피에 관한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 자리였다. 

그는 5일 서울 자양동 소재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라떼아트 작품을 구상할 땐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고자 늘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엄 바리스타는 "라떼아트는 빠르고 심플(단순)하게 포인트를 잡아내는 게 생명인데,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엄 바리스타와의 일문일답.

-어떤 계기로 라떼아트를 시작했나.

"요리나 기타, 춤 등에 흥미가 있었다. 군대 제대 후 초코시럽으로 만든 라떼아트 작품을 접한 후 이 분야에 처음 매력을 느꼈다. 이 때부터 라떼아트에 도전하고자 커피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듬해인 2006년엔 고향인 대구에서 4평 남짓의 개인커퓬?''카페마루''를 열었다. 이후 약 40평 짜리 커피숍 ''엄스카페''를 열며 라떼아트는 물론, 추출, 로스팅 등 커피에 관한 연구를 이어갔다. 매출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라떼아트를 깊게 연구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고 회상한다. 당시 구상하고 연구했던 아이디어를 지금와서 그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으니 과거의 시련이 헛된 시간만은 아닌 셈이다."

-라떼아트엔 타고난 미술적 감각이 필요한 건 아닌가. 작품 영감은 어떻게 얻나.

"그림을 전공한 이들이 라떼아트엔 약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라떼아트는 특징을 잘 잡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라떼아트는 생각과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많은 상상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을 둘러싼 배경도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각국 바리스타들의 작품에 각기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반영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지난 4월 중국대회 출품작 중 하나인 ''팅커벨'' 설명을 드리겠다. 이 작품은 과거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졸라맨''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팅커벨''은 대부분이 선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에칭기법으로 선 형태의 윤곽을 그린 후 마지막에 옷(몸통)을 노란색, 연두색 식용색소를 통해 그려냈다."

-라떼아트 시연할 때 근접 촬영해 보여주는 걸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프리젠테이션(PPT)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나와 맞지 않다. 게다가 라떼아트는 작품 제작 과정을 근접 촬영해 보여줘야 다른 사람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즉 라떼아트 시연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실력을 증명받는 방법이기도 하다. 라이브캠을 사용한 건 6년 정도 됐는데, 이젠 라떼아트를 시연하는 다른 바리스타들도 이 방식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세미나 등에선 항상 라떼아트를 먼저 시연하고 이를 나중에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엄성진 바리스타가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서 라이브캠을 옆에 두고 라떼아트를 시연하는 모습. 사진=오현승 기자.

-2016 월드라떼아트챔피언십 에피소드를 얘기해달라. 대회마다 각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이번 중국 대회 본선에서 테크니컬 점수는 65점 만점 중 20점에 불과했다. 다행히 심사위원에게서 창의성 부문에서 만점을 받으며 결선에 올라가게 됐다.(참고로 WLAC는 라떼아트의 시각적 매력, 창의성, 한 쌍의 패턴 동일성 및 대비 및 종합적 퍼포먼스 등을 평가한다) 또 세계대회에서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보인 작품과 같은 걸 선보이는 게 자칫 식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것도 중요한 고민 요소였다. 때문에 어떤 작품을 출품하는 게 좋을지를 두고 3개월가량 고민했다. 정작 실제 작품 연습은 대회 전 5일 정도에 불과했다.

대회에서는 현장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핵심이다. 어느 대회나 우유, 원두의 로스팅 정도,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등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백스테이지에서 짧은 연습시간이 주어지나 정작 무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다른 기종인 경우도 많다. 각 대회마다 일종의 텃세가 있기 마련인데 이 부분은 실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라떼아트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목이나 손목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몸이 경직돼 불필요한 힘을 주다보니 근육이 긴장한 탓이다. 나 또한 라떼아트를 처음 시작한 12년 전엔 같은 과정을 겪었다. 자신이 가장 편한 자세로 라떼아트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 마치 편하게 서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자세를 떠올리면 쉽다.
엄성진 바리스타는 라떼아트를 잘하는 비결과 관련, 연습량 못지 않게 많이 상상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원칙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 사진=오현승 기자.

스팀기에 우유를 넣어 거품을 내는 ''스피닝''(엄 바리스타는 ''롤링''은 잘못된 국내식 용어라 강조했다)도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세마나 등에서 다소 익살스럽게 우유피처를 돌려가며 거품을 내더라도 높은 완성도의 라떼아트를 선보일 수 있다. 특정 방식이 무조건 맞다고 추종하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긴 연습도 중요하지만, 라떼아트 작품을 많이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긴 도전 끝에 세계챔피언에 올랐지만 활동이 적은 편이다. 향후 계획을 설명해달라.

"세계챔피언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는 게 기본 생각이다. 대회 후 약 1년 가량은 앞으로의 활동을 구상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다. 향후 전세계 바리스타들을 만나 인터뷰해 이들의 스토리를 알리는 일도 매력적일 것 같다. 커피는 인문학, 과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할 수 있다는 게 매력 아닌가. 책이나 방송 등을 매개로 커피, 사람, 꿈 등을 공유하는 것도 여러 계획 중 하나다. 

이전엔 ''내 라떼아트 작품''을 만들겠다는 인식이 강했다. 앞으론 향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라떼아트를 펼치고 싶다. 내가 가진 능력인 커피를 매개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도 머리 속에 있다. 이를 테면 사회적 이슈인 세월호 사건 등을 모티프로 한 작품도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나만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싶다. 궁극적으론 커피를 통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게 목표다." 


● 엄성진 바리스타의 라떼아트 작품

사진1

사진2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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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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