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돈줄죄기에 은행 대출창구는 '개점휴업'

은행의 빗장걸기에 건설사 발동동…"서울 외에는 거의 승인 안나"
2금융권 노크하면서도 "이자 부담" 울상…개인 주담대도 빡빡해져

경기도 성남시의 A은행 대출 창구. 평소 같으면, ‘10월 이사철’을 맞아 북적거렸을 창구가 지금은 한산하기만 하다.

A은행 직원 E씨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집단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대출은 담보가 확실하기에 본래 쉽게 승인이 났다”며 “그러나 요새는 분양 단지의 분양 전망, 해당 건설사의 사업성, 채무자의 소득 등을 매우 꼼꼼히 따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광역시 B은행의 대출 창구도 비슷한 모습이다. 상반기만 해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9월부터 집단대출 대부분을 거절하면서 10월 들어 아예 발길이 뚝 끊겼다.

B은행 직원 F씨는 “과거에는 ‘뉴타운’ 등 건설사가 수백, 수천 세대의 분양을 실시할 때, 은행들이 서로 집단대출 계약을 따내기 위해 거센 경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모든 은행이 고개를 저으면서 건설사들이 돈을 빌릴 곳이 없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집단대출 안 해요”…빗장 건 은행 
우리은행 창구 사진(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육박하고,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54조원이나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은 7월 6조3000억원, 8월 8조6000억원, 9월 6조1000억원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9월 가계대출 증가액 중 주택담보대출이 5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86.9%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상반기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중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9.2%에 달해 전년 동기의 12.4%보다 4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그 중에서도 집단대출을 가계부채 폭증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8.25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고, 보금자리론의 자격을 강화했으며,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주택담보대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총량 규제에 나섰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은행들은 저마다 집단대출에 빗장을 걸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한 은행은 특별검사를 실시하겠다고 할 만큼 당국의 칼날이 시퍼렇다”며 “모든 일선 지점에 집단대출 심사를 대폭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발만 동동 구르는 건설사들

은행이 집단대출에 단단히 빗장을 걸면서 건설사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요즘 들어 은행의 태도가 너무 차갑다”면서 “사업주들이 은행을 찾아다니며 사업설명회도 하고, 분양 단지에 대한 홍보를 직접 하는데도 좀처럼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서울 등 사업성이 양호하다고 보는 지역에서나 은행이 흥미를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방의 분양 단지나 투기성 수요가 몰려드는 곳은 심각한 수준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사업성을 유난히 깐깐하게 따지고 있다”며 “지방은 사업성이 아주 뛰어난 곳 외에는 거의 집단대출 승인이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투기 수요가 몰릴 위험이 있는 분양 단지도 은행이 기피한다”며 “아마 시장이 안 좋아질 경우 수요가 급감할까 봐 우려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 문이 닫히면서 건설사들은 2금융권으로 밀려가는 상황이다. 실제로 GS건설이 수도권에서 분양 중인 A단지는 새마을금고와 집단대출에 관해 협의 중이다. 이 단지의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이 9대 1에 달했지만, 집단대출을 해줄 은행을 찾지 못한 것이다.

같은 주택담보대출이더라도 2금융권의 금리는 은행보다 1%포인트 이상 높기에 건설사와 입주자들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I건설사 관계자는 "은행에서 집단대출이 승인나지 않는 경우 소비자들이 보수적으로 돌아서게 된다"며 "이 경우 실수요가 있더라도 계약률이나 청약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J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에서 수요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종종 중도금 이자 후불제, 중도금 무이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며 "2금융권에서 집단대출을 받으면, 건설사의 이자비용 부담도 높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리 올려 개인 주담대도 억제
KEB하나은행 창구 사진(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집단대출처럼 빗장을 걸어버리진 않았지만, 개인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은행의 태도도 꽤 냉랭해졌다.

C은행 직원 G씨는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는 일반 소비자들을 막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예전처럼 주택담보대출을 권하며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D은행 직원 H씨는 “개인 주택담보대출도 되도록 줄이라는 본사의 지시가 내려왔다”며 “일단 집단대출처럼 거절하기보다 금리를 올려 자연스럽게 대출을 억제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6월 이후 한은 기준금리가 1.25%로 고정된 상태임에도 최근 은행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상승하는 정황이 잡힌다.

은행연합회에 의하면, 지난 7월 2%대 중반 수준까지 내려갔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리(1~2등급 기준)가 지난달부터 다시 2%대 후반 수준으로 올라섰다.

주요 원인은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 때문이었다.

지난 1월 0.48%였던 기업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는 9월 1.27%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0.33%포인트, 국민은행은 0.16%포인트,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은 0.14%포인트씩 가산금리를 올렸다. NH농협은행 역시 가산금리가 0.21%포인트 뛰었다.

금융권 資㎞喚窩渼?“정부의 성화가 심해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의 대출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이상현 기자 ish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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