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저촉되나"…김영란법 시행 첫날 곳곳서 혼란

지자체 콜센터에 문의전화 쇄도…법조계도 "판가름 어렵다"
공직사회 등 '안만나면 그만' 분위기 팽배…소극행정 우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투명한 사회로의 대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돼 곳곳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  식사비가 3만원 미만이라 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깊으면 법 적용대상이 된다고 하고, 한쪽에선 가능한 것이 다른 쪽에선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법 전문가들조차 판례가 쌓여야 기준이 세워지지 현재로서는 어떤 게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하네요.(A 건설사 직원)

# 공무원과 교직원 등 공직자 사이에선 벌써부터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전파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식사, 선물, 경조사비 등은 직무와 연관된 본인과 배우자를 제외하고 는 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모 또는 자녀 이름으로 받으면 된다는 것이지요.(세종시 근무 공무원)

# 이른 아침부터 4명의 직원이 정신없이 상담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오후 1시까지 80건 가량의 문의전화를 받은 것 같습니다.(자자체 콜센터 상담 직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8일 0시를 기해 본격 시행됐지만 광범위한 법 규정에 대한 해석과 대응책을 놓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법 적용 대상이 너무 넓은데다 사안별로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청탁금지법 사전컨설팅 콜센터에는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직사회 등 김영란법 대상자들 사이에서는 ''잘 모르겠으면 일단 하지 말기''  ''판례가 쌓일때까지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기''  ''잘 부탁한다는 말 하지 않기''  ''당분간 대외 접촉 피하기'' 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법에 대한 과거 판례나 명확한 가이드?없다보니 어디까지가 법에 위반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가운데 김영란법을 완벽히 숙지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과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점에서 본격 시행에 앞서 구체적인 적발 사례에 대한 홍보 등 충분한 계도기간을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 권익위 조차 명확한 기준 제시 못해…혼란 가중

국민권익위원회에는 범법자가 되고 싶지 않은 대상자들의 문의는 쇄도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혼란이 더 가중되는 양상이다.

권익위는 가액 범위를 넘는 축·조의금 반환 문제에 대한 지침을 보름여만에 번복했다. 권익위는 이달 6일 직종별 매뉴얼을 통해 공직자가 업무 관련자로부터 경조사비 가액 기준 인 10만원을 초과하는 축·조의금을 받았다면 전액이 수수 금지 금품 등에 해당하므로 모두 반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권익위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초과 부분만 반환하면 된다고 수정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권익위 내부에서조차 관련 매뉴얼에 따라 부처별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게 사실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감사실 등 담당기관들도 정확한 해석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례별 적용 실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탓이다.

◇ ''직무 관련성''에 대한 해석 모호

현재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직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다. 김영란법은 직무수행과 사교 및 의례 목적으로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 사비) 한도 내에서 주고받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가, 직접적인 업무관련성이 있는 관계라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커피 한잔도 허용되지 않는다. 성적을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직무관련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법관들을 상대로 한 설명자료에서 직무관련성을 따질 때 “사적인 친분관계 및 평소의 교류 ㅅ? 공직자 등이 해당 직위를 보유하지 않았더라면 공직자 등에게 해당 금품 등을 제공하지 않았을지 여부,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지 등이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대로라면 업무관계와 친밀감의 경계가 모호한 무수한 사례들이 있다.  공무원과 민간기업 대관부서 직원과의 관계는 직무관련성이 높지만 둘 사이가 오랜 친구 사이일 수 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가 점수를 평가하는 평가받는 관계지만 사제간의 정을 나누는 관계이기도 하다.

◇ 금융권, 사외보 폐간-자영업자 대출 어려워진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김영란법 대상자는 아니지만 업무상 공직자, 언론사, 교육기관 등과 접촉할 일이 잦기에 바짝 긴장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영란법 교육을 비롯해 공직자, 언론인, 교원 등과의 저녁 술자리 및 주말 골프약속 등은 이미 취소했다”며 “다만 김영란법 규제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면서도 애매모호해 많은 임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영란법 실시 영향으로 각 금융사들이 발간해오던 사외보가 폐간되고 있다.  기업에서 발행하는 사보(사외보)가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잡지나 기타 간행물로 등록된 경우 해당 사업자가 언론사에 해당한다는 권익위 해석이 있어서다. 신한은행의 ‘PWM’, 우리은행의 ‘투 체어스’ 등은 이미 폐간됐다.

주택도시기금, 공과금 등 정부기금 수탁업무를 수행하는 시중은행 직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의 통상적인 업무가 ''공무수행''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해 아직 뚜렷한  해석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들 은행은 변호사를 불러 자문을 받기도 했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듣지 못했다.

김영란법시행으로 자영업자들의 경우 종전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고급 음식업, 골프장 등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 확실해 자연히 리스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존 소호대출(자영업자대출)을 일제히 재점검하는 한편 소호대출 관련 리스크 평가 시스템 변경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소호대출 중 음식업, 소매업 등 김영란법으로 인해 리스크가 상승할 것으로 우려되는 업종의 비중이 20~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해 은행이 향후 매출 감소까지 계산해 리스크관리를 엄격하게 할 경우 기존 여신의 만기 연장이나 신규 여신이 거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다음달부터는 총체적상환능력 심사시스템(DSR) 규제가 상호금융권으로도 확대될 예정이어서 돈을 빌리기 힘들어진 자영업자들이 대부업체로 밀려나는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한편 국민연금 등 공공기관으로부터 권한(업무)을 위탁받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임직원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민간인이지만  공직자와 같은 공무수행 사인(( 私人)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공공기관 위탁업무 임직원을 명확히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투자사들의 경우 급변하는 자본시장에 맞춰 조직을 자주 변경하는 데다 업무가 복잡하고 다양해 해당 업무를 누가 담당하는지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고 말 했다.

◇ 공직사회 ''눈치보기''-''대외기피증'' 극성 조짐

당분간 공직사회에서 눈치보기와 대외기피증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소위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옷을 벗어야 할 것이라는  경계심이 팽배하다. 간단한 식사 대접도 괜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 법 시행 초기에는 아예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앞으로 2~3개월 정도는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만남을 자제하라는 내부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공직사회의 대외기피증으로 인해 소극행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급기야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공직자들이 오해 소지를 차단한다는 생각으로 대민 접촉을 회피하는 등 소극적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직무수행을 독려해 달라"며 소극적 행정에 경계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지켜질 지 의문이다.

◇ 달라진 국감장 풍경-''영란이앱''도 등장

최근 국회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점심값을 따로 계산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과 고용부, 출입기자단 모두 청사 구내식玲【?각자  계산을 하는 ‘더치페이’로 식사를 해결했다. 그동안 피감기관에서 주던 생수와 다과, 교통비도 각 상임위원회 행정실에서 제공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착안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이 앱은 김영란법에 대한 자가 체크리스트, 청탁 관련 면담 또는 식사 관련 청탁에 관한 일지 작성, 총액 합산 기능, 대상 기관 검색 등의 기능을 갖췄다. 일지는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자신의 휴대폰에만 저장되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될 염려가 없고 금품관련 항목은 사람 또는 기관으로 정렬해 총액을 합산해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송광섭 기자 songbird8033@segye.com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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