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A(41)씨는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아버지 계좌의 돈을 아버지의 다른 계좌로 송금하려고 우체국을 찾았다가 본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할 수없이 우체국에 부탁해 승용차로 직원을 태워 병원으로 데려가서 아버지의 의사를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계좌이체를 할 수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면서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금융약자들이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점을 인식하고 금융약자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을 적극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태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장애인 수는 249만명으로, 이중 지체장애·뇌병변장애·정신장애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65.5%인 163만1000명에 달한다. 또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전됨에 따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도 지난해 662만4000명에서 2020년에는 1762만2000명으로 지난해의 2.7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장애인과 고령자는 급격히 진화하는 금융서비스에 상대적으로 취약해 이들이 모바일 중심으로 바뀌는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금융복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금융취약자에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금융기관의 장애인 편의성 제공 지침 준수율은 웹 접근성 부문 83%, 스마트금융 68%, 자동화기기(ATM) 5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7개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애인에 대한 별도 서비스 절차를 갖춘 곳은 6개 은행에 불과했고, 수화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2곳, 장애인 서비스 관련 직원 교육을 실시하는 곳은 5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고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 ''고령자·장애인·외국인 등을 위한 금융서비스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모두 고령층 위한 금융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접근성·활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ATM의 경우 음성 안내를 받아도 카드 투입구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는 등 세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BNK부산은행 |
◇은행의 지원 노력=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은 이미지를 개선하고 금감원 지침을 준수하기 위하여 금융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BNK부산은행과 JB광주은행,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고령층을 위한 특화점포를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BNK부산은행은 지난 7월25일부터 전국 266개 영업점에서 65세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어르신 전담창구’를 설치했다. 큰 글씨로 제작된 별도 상품안내장도 비치했다. ‘어르신 전용 바로상담’ 창구도 운영 예정이다. 이동점포가 경로당 등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어르신 은행’이다.
JB금융 광주은행도 노인 특화점포를 운영 중이다. 창구 거래시 발생하는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노후 자금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KEB하나은행 |
KEB하나은행은 어르신 금융상담 창구를 전국 820개 지점에 설치했다. 기업은행 역시 지난달부터 서울 독산동, 공항동, 수색동, 약수동, 마들역 지점에 어르신 우선 창구를 개설했다. 어르신 우선 창구는 노인만을 위한 상품을 취합하거나 큰 글씨 안내장 표기, 돋보기 안경 배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융기관의 장애인 접근성은 여전히 ‘바닥’= 경남장애인권리옹호네트워크가 지난 3월 실시한 경남지역 은행자동화기기의 ''장애인 접근성·기기 활용성에 관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양산, 사천, 통영, 거제, 창원, 밀양, 김해, 진주 등 8개 시의 평균 접근성은 59%, 활용성은 4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근성'' 측정은 출입구 높이차가 있는 경우 휠체어 리프트 또는 경사로의 설치, 건물 접근로의 유효폭,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형블록 설치, 주출입구가 회전문인 경우 별도의 문 설치여부, 건물 내에서 층간 이동시 엘리베이터 설치, 은행창구의 접근성, 편의제공 부재 시 대체 서비스 요건이었다. 장애인이 자동화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활용성''은 ATM 카드 투입구·통장 투입구·현금 출입구 등 위치 불편 등을 측정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자동화기기 점자 카드 투입구,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서비스 외에는 장애인 맞춤형 금융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ARS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OTP, 점자 ATM기, 점자 보안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장애인이 직접 창구를 방문해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여전히 접근성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장애인시민단체 관계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투자를 안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며 "국가에서 디테일한 규정들을 연구해서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이 필요한데 규정의 디테일이 떨어지다 보니 그냥 명패만 붙여 놓는 금융기관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접근성에 관한 문제는 장애유형별로 천차만별"이라며 "휠체어 등 보조기기를 착용하고도 은행 창구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테이블이 움직인다던가, 시각장애인들이 음성만으로도 카드 투입구 등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보다 세부적인 강제조항들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통역이 필요한데 수화가 가능한 창구 직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영상통화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런 핫라인을 갖춘 곳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현근식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부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자동화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화기기 설치 등 관련 문제제기가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이동점포를 운영하는 은행들이 있어도 장애인들의 정보접근성이 낮다보니 그런 것을 운영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장애인·고령자 전담창구를 설치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침만 내리고 따로 강제하지는 않고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고령자들은 법정 대리인에게 위임장을 써주어서 대신 은행 업무를 보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정대리인이 은행 업무를 대리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정대리인은 위임을 받지 않고도 직접 법률 규정에 의해 대리권의 효력이 발생하는 친권자, 후견인을 말한다. 우선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후견인이 되는 ‘법정후견인’ 신청을 해야 한다.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위한 ‘성년후견인제도’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는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고 복잡할뿐더러 후견인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면 1년까지여서 당장 금융업무를 처리해야 할 경우에는 활용하기 어렵다.
이정화 기자 jh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