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승의 커피人사이트]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를 아시나요?

오미란 힐링커피로스터스 대표
전세계 37명, 국내 4명뿐인 커피감별사 양성하는 직업
"한국, 종자 개발·발효법 등 커피연구 집중육성 필요"

우리나라 성인의 한해 평균 커피소비량은 500잔에 이른다. 어림잡아도 한 사람당 하루 평균 1잔 반 정도는 마시는 셈이다.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는 200개를 넘었고, 전국 커피 매장수도 5만개를 헤아린다. 커피 원두 수입량와 커피음료 시장 규모는 어느덧 세계 ''톱5'' 수준까지 올랐다.
자연스레 커피 제품의 형태와 종류는 물론, 커피를 즐기는 방식, 관련 직업도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 산업적·문화적·사회적 측면에서 커피가 갖는 의미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세계파이낸스는 커피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오현승의 커피人사이트''를 연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커피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커피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커피가 대중화하면서 관련 직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바리스타를 비롯해 로스터, 커피무역상, 커피 기계 엔지니어, 카페 창업컨설턴트 등 그 종류와 수요도 느는 추세다.

이 중 커피의 품질, 맛, 특성 등을 감별해 생두나 블렌딩, 로스팅 등의 품질을 파악(''커핑'')하는 커피감별사 ''큐그레이더(Q-Grader)''는 어떤 직업보다 섬세함을 요한다. 미각, 후각, 시각 등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통해 커피의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맥주로 치자면 ''브루마스터'', 향수로 치자면 조향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 같은 큐그레이더를 길러내는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더욱 희소성을 갖는다. 현재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전세계에서 37명, 국내에선 4명에 불과하다.

오미란 힐링커피로스터스 대표.
이 가운데 오미란 힐링커피로스터스 대표는 국내 유일의 여성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로 주목받는다. 지난 2012년부터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로 활동을 시작한 오 대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주 활동무대로 전세계를 돌며 큐그레이더 육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후배 큐그레이더를 키움과 동시에 커피숍 운영, 커피 관련 컨설팅, 생두 중개상 업무까지 맡고 있다. 그야말로 커피 전문가다.

기자는 지난달 24일 서울역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오 대표를 만났다. 그는 큐그레이더 양성 교육, 부산 카페쇼 참석 등을 위해 약 한 달간의 짧은 일정을 한국과 일본에서 보냈다. 그는 "국내 커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큐그레이더 육성을 비롯해 커피 발효, 종자개발 등의 분야에서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 강조했다. 다음은 오 대표와의 일문일답.

-큐그레이더와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매우 생소한 직업인데 소개한다면.

"큐그레이더는 커핑을 통해 커피의 품질을 등급화하는 사람이다. 품종에 따라 ''큐 아라비카 그레이더''와 ''큐 로부스터 그레이더''로 나뉜다. 과거 ''큐그레이더'', ''알그레이더''로 부르던 게 혼동을 줄이기 위해 최근 이렇게 바뀌었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 산하 커피품질협회(CQI : Coffee Quality Institute)에서 인증한다.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단어 그대로 큐그레이더를 양성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전세계 커피 산지나 큐그레이더를 희망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돌며 커핑을 가르친다. 커피 관련 일반이론을 비롯해 미각, 후각, 겸점두향, 생두 및 원두 감별, 로스팅, 커피 산지별 커핑 등 20개 과목을 교육한다. 이 업무는 전세계 주요 커피 산지의 품질 향상을 유도하고 이들이 좀 더 높은 등급을 받도록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어떤 계기로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되었나.

"일단 큐그레이더가 된 과정부터 설명드리겠다. 육아 과정에서 우연히 커피의 유래, 역사, 효능 등이 실린 ''커피견문록''이란 책을 읽다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무역사업을 하던 지난 2009년, 미국 스페셜티커피 수출기업 ''카페 임폴츠''의 아시아 독점 판매권을 따낸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생두 사업가로서 관련 지식을 갖춰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있게 커피를 소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2월 미국 롱비치에 있는 SCAA본부에서 시험을 치렀고 운 좋게 한 번에 큐그레이더 취득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미국 내 몇몇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관련 수업을 진행할 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단 한번도 거절없이 도왔다. 그러던 도중 미국의 마티 커티스(Marty G. Curtis)와 CQI 창시자인 테드 링글(Ted Lingle)에게서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사사했다. 그 외에도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인 앤드류 헤첼(Andrew Hetzel), 마뉴엘 디아즈(Manuel Diaz)와도 공동수업을 열면서 우간다, 예멘, 에티오피아에서 수업의 기회를 얻었다.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되기 위한 과정은.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해선 20개 과목(버전 4.0 기준)을 모두 패스해야 한다. 그 전엔 22개 과목이었다가 2개가 줄어들었지만, 단 한 과목이라도 과락을 받으면 안 된다. 관련 과정은 계속 바뀌고 있다. 1주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습 과정을 거친다.

큐그레이더를 취득했다 하더라도 곧바로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큐그레이더가 되면 수업 참관, 조교업무, 리드 클래스 진행 등의 여러 과정을 거친다. 일종의 도제식 교육이다.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딴 후 약 4~5년 정도는 지나야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가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또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격년 주기로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꾸준한 실력을 유지해야 인스트럭터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로서의 보람이나 애로사항이 있다면.

"전세계를 돌며 큐그레이더 교육을 진행하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점을 느낀다. 섬세하고 세밀한 미각·후각 능력을 갖춰 맛감별 능력이 대체로 우수한 편이다. 큐그레이더 양성 교육은 1주일 동안 이뤄지는데 수업 초기 커핑 작업 등에 어려워하던 학생들이 단기간 내에 감별 실력이 늘고, 또 6개월 후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는 걸 보면 고마움까지 느낀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도 몸이 아프면 안 된다. 감기라도 걸리게 되면 미각, 후각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커핑 작업은 물론, 인스트럭터로서의 교육도 할 수 없게 돼 버린다. 비타민C 섭취를 비롯해 감기 조짐이 보이면 미리 약을 먹는 식으로 대비한다. 이밖에 커피 산지 등을 방문할 때엔 풍토병이나 고산병을 막기 위해 미리 예방접종, 약 복용 등의 조처를 한다. 문화나 역사가 다른 커피 산지 교육 과정에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오미란 대표는 전세계를 돌며 큐그레이더를 육성한다. 오 대표는 전세계 커피 산지를 돌며 해당 국가나 지역의 생활 관습, 역사, 문화, 지리, 기후 등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로의 매력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사진=세계파이낸스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며 겪은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멘의 올드 사나에서 교육을 진행한 경험이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외국인 신분이었지만 예멘에 가기 위해 현지 복장을 갖춰야 했다. 이 곳이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예배를 이유로 수업 도중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었다. 다소 당황스럽더라도 우리와 다른 종교적 배경에 따른 것이라 이해했다. 전세계 커피 산지를 돌며 해당 국가나 지역의 생활 관습, 역사, 문화, 지리, 기후 등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이 직업을 통해 얻는 또 다른 기쁨이다."

-국내 커피산업 발전을 위해 제언을 한다면.

"아시아가 커피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에서 주로 음용하던 커피가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스페셜티커피가 소개됐고, 이제 다시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로 퍼져가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커피를 생산할 만한 자연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신 커피 관련 리서치센터를 세워 아첸?국가의 커피를 연구하는 국가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지녔다. 특히 종자개발 및 발효법을 집중 연구한다면, 우리나라는 커피 지식국가로서 세계적으로 큰 역할을 할 거라 전망한다.

우리나라가 스페셜티커피만 강조하기엔 금전 싸움에서 중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학구적인 분석력 및 자료조사력을 잘 살린다면, 커피 연구는 한국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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