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산은 혁신방안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KDB산업은행이 23일 혁신방안을 발표한다며 기자간담회 일정을 통보한 것은 이틀 전이었다.  이동걸 회장이 직접 나서는 간담회를 불과 이틀 전에 출입기자들에게 통보한 것을 보면 일정이 급박하게 잡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업-기업 구조조정이 국민적 관심사인데다 산업은행이 그 한복판에 있는 있는 만큼 산은의 혁신안 발표에 관심이 쏠렸다.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등과 관련해 산은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자본 확충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자구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상당한 수준의 혁신안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연 ‘KDB 혁신 추진방안’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부분의 내용이 이미 알려진 것들이고 그나마도 구체적인 내용은 9월 이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달부터 8월까지 두 달간 조직 진단을 거쳐 8~9월 혁신로드맵을 도출한 뒤 9월 이후 세부과제를 시행하겠다고 산업은행은 밝혔다.  혁신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조직 진단마저 외부전문기관이 혁신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설익은 혁신안이었다.

준비가 덜 됐음에도 산업은행이 혁신안 발표를 서두른 것은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와 검찰 수사로 산은이 책임론이 커지고 있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가 1조5000억원이었다. 그렇지만 검찰조사 결과 분식회계 규모가 그 3배가 넘는 5조원에 육박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연히 모회사인 산은은 그동안 뭘 했냐는 비판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먼저 혁신안 카드를 꺼낸 게 아닌가 여겨진다.

설익은 것이긴 하나 산업은행으로서도 인원과 조직을 줄이고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출자회사 관리를 강화, 구조조정 역량 강화, 임직원 재취업 제한과 윤리의식 제고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일부에서 "이미 나왔던 내용까지 다 포함시킨 백화점식 대책"이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성의는 표시한 것이다.

''산은 ?獺?의 핵심은 조선·해운업이 이 상태에 오기까지 채권단의 핵심으로서 뭘 했느냐는 것이다. 특히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의 분식회계가 있었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4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고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산은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산은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정치권과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지역 경제 등을 내세운 정치권의 입김이 냉철한 판단에 기초한 부실기업 처리에 걸림돌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산은 책임자가 오로지 기업논리와 경제논리 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굳이 "서별관회의에서 이미 대우조선 지원방안을 결정해 통보하는 식이었다"는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의 발언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산은의 개혁만으로 대우조선 부실과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산은의 혁신안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산은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며, 충분조건을 완성하려면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산은만 다그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이것만 갖고 되겠냐"고 따지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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