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정노동자보호법 제정만큼 소비자인식 개선 절실

장영임 기업은행 동여의도지점장

장영임 기업은행 동여의도지점장.
"무리한 요구사항으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나는 고객센터 상담업무, 마음의 상처로 너덜해진 어느 날 무심히 바라본 상담석 거울에는 슬픈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도 분명 ''딸바보''인 아버지의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객 상담으로 인한 감정노동에 휘둘리며, 커져가는 자괴감과 의욕상실 등을 뒤로하고, 또 다시 울리는 고객전화를 받습니다. 가면 뒤에 눈물을 숨겨두고 내 마음과 반대되는 정신적 노동을 오늘도 되풀이해야만 합니다."

악성민원인을 대한 후 한 고객상담원 A씨가 기술한 자신의 감정상태다. 이러한 예는 비단 A씨의 경우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텔레마케터나 고객상담실의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가 피로회복제 광고에까지 등장했을까.

A씨가 겪은 유사한 상황과 관련한 한 판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은행 창구에서 막무가내식 횡포를 부리며 여직원에게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왜 잘 웃지 않느냐”며 1시간 넘게 직원을 괴롭힌 3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구류를 선고 받았다. 즉결심판에서 이런 처분이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세상 누구도 타인에게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고, 단지 서비스직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감정까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라는 게 법원의 주된 의견이었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타인의 서비스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보니 산업이 발달하고 서비스업이 증가하면서 감정 노동자 또한 급격히 늘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업 근로자의 약 40%에 해당하는 800만명이 서비스업 종사자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친절과 미소로 업무를 수행瞞?하고,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감정적 부조화를 겪게 되니 우울증이나 신경 정신계 질병을 겪기도 한다. 2013년 노동환경연구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감정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약 30%는 자살 충동이라는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울증 등에 걸린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키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이나, 고객 응대 직원에 대한 회사 측의 보호조치 의무가 강화되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개정(2016년 6월)등의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같은 최소한의 법적 장치보다도, 고통 받는 감정 노동자가 더 이상 늘지 않도록 예방 관리하는 환경조성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더 우선이 돼야 한다. 덮어 놓고 고객이 최고라는 회사 측의 낡은 구호 대신 종업원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균형 잡힌 입장이 더 중요하다.

감정노동자들은 결국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 자매다. 감정노동자들을 대하는 따뜻하고 배려심있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누릴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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