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조개편 '갑질'로 인한 책임은 누가 지나

10일 현대상선이 향후 3년6개월 동안 해외선주들에게 지급해야 할 용선료 약 2조5000억원 가운데 5300억원 가량을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한진해운에 앞서 자율협약을 통한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정부의 기업·산업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앞으로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출자 전환을 통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로써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산업은행의 133, 134번째 비금융자회사로 편입된다.

이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등 무려 132개에 이르는 금융·비금융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산업은행은 우리나라의 양대 선사마저 거느리게 된다.

이쯤 되면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이라기 보다는 제조업과 금융산업을 아우르는 거대재벌인 KDB그룹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은행업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도 산업은행에게만은 예외다.

이처럼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산업은행의 역할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써 취약업종에 대한 지원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기업이 부실해지면 자회사로 넣고 이른바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이란 방향도 정부가 정한 것이다.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대부분 조선·철강·건설·해운 등 업황이 좋지 않은 한계기업들에 쏠린 현상도 이들 기업을 지원하다가 생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대우조선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우리는 들러리에 불과했다”고 폭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2010년 말 박 대통령의 정책 싱크탱크로 불린 국가미래연구원의 창립 멤버였고 2013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한 친박(親朴) 핵심이다. 정부와 여권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대우조선 부실에 대한 산업은행 책임론이 확산되자, 홍 전 회장이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자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정부 산하 기관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인사권을 쥐고 좌지우지한다. 한계기업에 ‘실탄’을 대주는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부실해졌는데 정부는 정말 이 사실을 지금까지 까맣게 몰랐다는 말인가. 국책은행의 부실 경영과 정부의 관리 실패가 따로따로일 수는 없다. 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때는 이래라저래라 갖은 참견을 다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책임을 전가하듯 남 탓을 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모습을 국민들이 이제는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 않다.

툭하면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공조를 강조하면서 한국은행에 기준금리를 낮춰달라고 요청한다. 한은을 압박하는 카드도 다양해져 이번에는 구조조정에 역할을 해달라며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데 출자해달라고 손을 벌렸다. 그렇게 매번 중앙은행이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돼도 상대적으로 한은은 외풍을 크게 탄 적이 없다.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없지만 법적으로 일단 독립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정책금융 개편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에도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논의는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전 정권에서 시도하다 수포로 돌아간 산은 민영화작업이 재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장관급으로 격상된  만큼 우리경제의 체질 개선을 취한 산업구조개편 작업도 이제는 과거와 분명 달라져야 한다. 그 선결조건으로 산업은행의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 국책은행의 주무기관인 정부 또한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인한 책임을 전가하는 구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주먹구구식 구조개편으로 인한 피해는 그 규모가 엄청난데다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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