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법정관리행…자금지원해도 회생 어렵다 판단

재실사 결과 부족자금 7천억~1조2천억원 예상
금융권 "법정관리 가면 청산 가능성 높아" 전망

한때 세계 최고 회전율을 자랑했던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도크. 사진=세계일보 DB
STX조선해양이 2013년 4월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한 지 3년2개월 만에 결국 법원 주도의 기업 회생절차인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STX조선은 3년간 무려 4조5000억원대의 신규 자금이 투입되고도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원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25일 여의도 본점에서 한국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참석한 채권단 실무자회의를 열고 “추가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율협약을 지속할 경제적 명분과 실익이 없으며, 회사도 회생절차 신청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 이달 말 부도 불가피…다음달 초 법원에 신청할 듯

채권단은 이달 말까지 채권단 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자율협약을 종료하고 법정관리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채권단은 최근 삼일회계법인이 마무리한 재실사 결과의 초안을 바탕으로 회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향후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했다.

재실사 결과 STX조선의 유동성 부족이 심화돼 이달 말에 도래하는 결제자금을 정상적으로 낼 수 없어 부도 발생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협약 체제에서 내년까지 수주가 남아 있는 선박을 정상 건조해 인도금을 받더라도 부족한 자금은 7000억~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산업은행은 “신규 수주 불가, 부족자금 지속 증가, 해외 선주사의 가압류 등 조선사로서의 계속기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7000억~1조2000억원에 이르는 부족자금을 추가 지원할 경제적 명분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杉? 산은은 “부족자금을 지원할 경우 채권단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상환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덧붙였다.

잔여 선박을 정상 건조해 인도금을 수취하더라도 또다시 막대한 추가 건조자금이 필요하고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데다, 신규 수주가 없고 급격하게 건조 물량이 감소할 경우 부족자금 규모 확대는 물론 정상 건조가 불가능한 상황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 선주사가 손해배상 청구 관련 가압류 및 국내 집행을 추진함에 따라 공정 중단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도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 배경이 됐다.

채권단이 이날 회의에서 법정관리 방침을 확정하게 됨에 따라 STX조선은 다음달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통합도산법에 따른 기업 회생절차, 즉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다.

◇ 청산 가능성 높아…1조2000억 RG도 문제 ‘2차 후폭풍 우려’

STX조선이 전격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3년 4월 이 회사가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한 지 3년2개월 만이다. 자율협약 개시 이후 STX조선에 투입된 신규 자금은 4조5000억원대다.

실제로 STX조선에 대한 법정관리가 결정되고, 채권단의 법정관리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채무 탕감 등을 통한 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청산된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법정관리로 가면 청산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3년간 채권단이 막대한 지원을 했는데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이라 채권단 지원이 끊기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본잠식 상태도 벗어나지 못했다.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채권단에 남아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상당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STX조선이 채권단에 진 빚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조9000억원에 달한다. 일단 법정관리로 가면 산은과 수은은 STX조선의 침몰에 대비해 그동안 쌓았던 대손충당금보다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특히 수은은 1조원 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간 쌓아놓은 돈은 6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또 있다. 선박을 주문받고 미리 일부를 받아 STX조선이 선박 건조 자금과 운영 자금으로 사용한 선수금?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이다.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선주들이 선박 주문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은 등이 선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STX조선의 RG 규모는 약 1조2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선주들이 1조2000억에 이르는 RG 상환 요청을 하면 금융권에 2차 후폭풍이 예상된다. 산은은 다만 “자율협약을 개시한 이후 회사채 등 비협약채권이 1조4000억원에서 올해 4월 기준 2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한 까닭에,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 협력사 구제방안 이달 말 나올 듯…채권단, ‘파장 줄이기’ 안간힘

산업은행은 법정관리에 돌입한 이후 현재 건조하고 있는 52척의 선박을 정상 건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계속기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과감한 인적·물적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하도록 돕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STX중공업 등 관계사의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므로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수립하고, 협력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금융당국과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구제방안은 이달 말까지 채권단 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다음달 초 전에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회생절차를 통한 과감한 인적, 물적 구조조정이 있어야만 원가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최소한의 생존 여건 확보가 가능하다”면서 “이달 말까지 채권단 협의회 논의를 거쳐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까지 협력업체 미지급 규모는 약 5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재대를 제외하고는 사내 외주 인건비, 중소 협력업체 앞 물품대 및 미지급금으로 구성돼있다. 사내 외주 인력은 4600여명가량이다. 채권단은 주채권은행과 금융당국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협력업체 피해 최소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채권단은 “회생절차 하에서 생존 기반 확보 및 정상 가동이 가능한 경우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재편 과정에서 블록공장 전환 등 별도 활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앞서의 대응방안은 채권단의 판단이며, 회생절차 특성상 법원의 판단에 따라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변경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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