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소멸시효 관계없이 자살보험금 지급해야"

고객의 청구와 당국의 지도에도 지급않고 시효 주장은 신의칙 위배
자살보험금 81% 시효 지나…불이행 시 회사·임직원 엄재제재 방침

표=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이 23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보험금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대법원이 ''자살도 재해로 인정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림에 따라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권을 2년(2015년 3월 이후에는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 2년 이전의 계약에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할지 여부와 관련해 보험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어떠한 형태이든 보험금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방침을 밝혔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보험사가 ''신뢰''가 무너진다면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금감원은 ''보험회사가 약속한 보험금은 반드시 정당하게 지급돼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업계에 높은 수준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해왔다"며 "이번 자살보험금 사례에서도 일관되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2월26일 기준으로 자살관련 미지급 보험금은 2980건 2465억원이며, 이중 소멸시효가 경과한 것은 2314(78%), 2003억원(81%)에 이른다. 따라서 자살보험금 지급여부와 관련한 쟁점은 소멸시효를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주요 쟁점에 관한 금감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보험 수익자가 청구한 사망보험금을 보험사가 주계약에 의한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한 후 2년이 경과됐다면 보험사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게 정당한지?

금감원은 ''약관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 부합하게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보험 수익자가 보험금을 정당하게 청구했고 감독당국이 지급을 하도록 지도했는데도 보험사가 이를 지급하지 않고 미루다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민법상 판단에 앞서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강조했다.

보험전문가인 회사가 보험금의 일부를 고의로 누락하고 이를 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객이 자살보험금을 구분해서 청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권 부원장보는 "고객은 주계약과 특약의 보장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사망보험금을 청구할 당시 보험사가 약관에 따라 지급해야 할 모든 보험금을 정확하게 지급하였을 것으로 신뢰한다"며 "회사의 귀책사유로 특약에서 정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추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보험금 등의 지급 시기를 대법원 소멸시효에 관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보할 수 없는지?

금감원은 보험사가 소멸시효 기간 경과에 대한 민사적 판단을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금감원은 그동안 ING생명 검사·제재, 생보사를 대상으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지도하고, 추가적으로 16개 생보사에 대한 검사 등에도 불구하고 해당 생보사들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늦췄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 시점까지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자살보험 관련 계약의 80% 이상이 소멸시효를 도과햤다.

권 부원장보는 "소멸시효 제도에 따른 민사적 판단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는 것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보험사가 현재까지 지급을 지연하면서 미지급 보험금에 약관대출이자율(10% 내외)로 부리된 수백억원의 지연이자를 추가로 지급하여야 함에도 소비자 믿음에 반하여 민사소송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하면 금감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

금감원은 대법원에서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가 애초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보험업법 위반행위에 대해 권한에 따라 검사·제재 및 시정조치를 일관되게 취한다는 방침이다.

권 부원장보는 "보험사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휴면보험금을 보험계약자와 수익자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과 같이 이번 자살보험금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급해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앞으로 특약에 의한 재해사망 보험금 지급을 거부, 지연한 회사와 임직원을 엄정히 제재조치하고, 보험금 지급률이 저조한 회사의 지급 절차 등을 현장검사를 재실시할 계획이다.

나아가 금감원은 보험사 귀책사유로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 소멸시효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등 관련 법규 개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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