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부는 임금 반납 바람…다음 차례는 누구?

KEB·산업·수출입銀, 연봉 인상분·시간외수당 등 반납
국책은행 임금 반납 ‘릴레이’, 기업은행도 동참할까?…성과연봉제 도입 소문도
연봉 반납, 성과연봉제 도입 전초될 수도…노조, 격하게 반발

겨울바람 만큼 차가운 한파가 은행권에 몰아치고 있다.

초저금리, 저성장, 대기업 부실, 한계기업 구조조정 등 경영 악재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영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임직원들이 임금마저 반납하고 있다.

이미 모든 은행과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들이 연봉 일부를 내놓은 가운데 직원들도 차례차례 동참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외환은행지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3곳의 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해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성과주의 확산’을 언급한 뒤 직원들의 임금 반납 바람이 불어 “성과연봉제 도입의 전초”라는 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 임금 반납 ‘릴레이’

일반 직원 연봉 반납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KEB하나은행이었다. 지난 16일 KEB하나은행 외환은행지부 소속, 즉 옛 외환은행 출신 직원 6900명은 올해 임금 인상분 2.4%를 전액 반납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은 대개 연말까지 나야 결론이 나기 때문에 은행원들은 연말에 그 해의 임금 인상분을 한꺼번에 받는다”며 “이 돈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같은 은행임에도 하나은행지부는 연봉 반납에 동참하지 않았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지부와도 같은 내용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7일 산업은행 팀장급 이상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을 반납했으며, 어제는 수출입은행 직원들도 전원 11~12월 시간외수당 2개월치와 연차수당 2일분을 포기했다.

특히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세금과 기부금 등 일부 필요 경비를 뺀 기본급 1억9000만원을 모두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누구?…떠는 은행 직원들

이에 따라 다음에는 어느 은행 직원들이 연봉 반납의 회오리에 휩싸일지 주목받고 있다.

유력한 주자로는 기업은행이 꼽힌다. 기업은행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이라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다만 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임금 반납을 검토한 적 없다”고 부정했다.

정부가 대주주라 역시 입김을 세게 받는 우리은행의 경우는 아직 임금단체협상이 끝나지 않아 연봉 반납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직원 A씨는 “임금 인상분 반납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올해 임금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도 아직 임단협이 타결되지 않았다.

정부의 의향에 제일 영향을 적게 받는 것으로 알려진 신한은행은 연봉 반납의 가능성이 낮게 점쳐진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임금 반납 여부는 고려한 적 없다”고 전했다.  

◆임금 반납 다음은 성과연봉제 도입?

이번 은행원들의 연봉 반납이 심상치 않은 것은 금융당국의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게 관측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한 은행들은 모두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임 위원장은 지난 12일 “현재 호봉 중심인 은행원 임금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다음 금융개혁 목표는 금융권 성과주의 문화 확산”이라고 밝혔다. 은행의 수익성 증대를 위해서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성과가 낮은 직원의 연봉을 깎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정확히 나흘 뒤 KEB하나은행 외환은행지부 소속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을 포기했다. KEB하나은행 외에 연봉을 반납한 곳은 모두 국책은행이란 점도 예사롭지 않다.

때문에 “임금 반납 다음은 성과연봉제 도입 아니냐”는 시각이 유력하다.

실제로 임 위원장의 발언 후 은행권 CEO들이 여기에 속속 동의하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성과주의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성과 중심의 인사를 반드시 정착시켜 앞으로 인사 운용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며 “개인 성과 부분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성과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은행장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국책은행부터 정부 방침에 따르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의해 기업은행이 곧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한편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노동계는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임 위원장과 진 원장에게 보낸 공문을 보내 “성과연봉제 도입 강행은 곧 ‘9.15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및 산하 35개 지부도 “임금 체계는 노사 자율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금융당국이 간섭하는 것은 명백한 관치금융”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문호 금융노조위원장은 “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일 경우 15만 금융노동자가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지부 역시 "성과주의 확산은 금융권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노조를 무력화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개인의 역량만을 강조하는 임금 체계가 회사수익 감소, 조직의 일체감 저해 등의 그릇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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