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발목잡는 저성장④] 내·외수 '복합불황' 그림자

민간소비 추세성장률, 2000년 4.5%→지난해 2.4%
수출의 장기 추세성장률도 '12.9%→7.9%'로 급락


“최근 국내총생산 장기 추세성장률 하락은 장기화되고 있는 내·외수 복합불황이 주된 원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주평, 2015년 8월21일자)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기업은 금융위기 전후 시기까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영성과를 보여 왔다. 그러나 2010년대 들면서 성장세가 현저히 둔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글로벌 기업의 경영성과’ 보고서, 2015년 8월26일자)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멈춰서고 있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양축인 내수와 외수가 복합적으로 불황에 빠지며 쌍발엔진 모두가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다.

내수라는 한쪽 엔진이 꺼지면 외수라는 다른 한쪽 엔진만으로도 국가경제를 정상적으로 끌고 나가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경제는 그동안 내수 부진에도 성장을 주도하던 수출이 주춤거리면서 마저 남은 엔진조차 고장이 나고 있다.

3%대 성장으로 경기 연착륙을 시도하려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한국 경제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불시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주) 국내총생산의 추세성장률은 잠재성장률과 동일한 개념. 자료=현대경제연구원 자체추정

◆ 수출로 버텼지만…10여년前 이미 시작된 ‘내수침체’

2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200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무려 15년 넘는 62개 분기에 見4?국민계정의 경제활동별 국내총생산(GDP)의 연간 및 분기 자료를 이용해 장기 분석한 결과, 민간소비의 추세성장률은 2000년 약 4.5%에서 지난해 2.4%로 주저앉았다.

추적 기간 동안 민간소비의 추세성장률이 거의 ‘반 토막’이 난 것이다. 특히 민간소비 추세성장률 기간평균을 살펴보면 2000~2007년 만해도 8년간 3.6%에 달했으나, 2010~2014년 최근 5년 사이에 2.5%로 1.1%포인트나 급락했다.

국내총생산의 추세성장률이 2000년 5.6%에서 지난해 3.4%로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지속적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소비는 해마다 악화되는 추세성장률에도 크게 못 미쳐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내수 침체는 시작됐던 셈이다. 국내총생산의 추세성장률은 잠재성장률과 동일한 개념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민간소비의 실질성장률은 2012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추세성장률 보다 낮으며 민간소비 추세성장률 하향압력 역시 커지고 있다”면서 “민간소비의 순환변동치는 수축국면에 진입한 이후 아직까지도 회복국면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어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소비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며 “2012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3년 연속 1%대에 머무르면서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 12.9%에 도달하는 등 금융위기 이전까지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던 수출의 장기 추세성장률 또한 지난해 7.9%까지 하락했다. 10여년간 이어진 내수 침체에도 국민 체감과 다른 성장률 등 양호한 경제지표를 달성한 배경에는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높았던 탓이 크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근래 실질 GDP성장률이 지속적으로 2~3%를 유지하고 있어 추세성장률은 당분간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총생산의 경기순환 역시 현재 후퇴기에서 수축기로 접어들어 전반적으로 수축국면에 위치해 있다”?평가했다.

자료=현대경제연구원

◆ 과도한 ‘수출주도 성장전략’ 고수…뒤늦은 ‘구조개혁’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력과 복원력 회복을 위해 신속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정책당국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일관된 추진을 통해 국내 유효수효의 창출과 경기 회복력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충고다.

또 민간 부문의 투자 확대 노력과 동시에 공공 부문의 투자 활성화 및 효율성 극대화 방안이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수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율과 같이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운 영역 이외에 신(新)시장 개척, 비가격 경쟁력 개선 등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정부의 지식재산투자를 꾸준히 늘리는 한편, 연구·개발(R&D) 효율성 등을 제고해야 하며 경기 상황에 대한 분석력을 길러 정부정책 의사결정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김천구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신성장 산업 육성을 계속 도모하고 국내 산업구조를 모방형에서 창조형 구조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의 노력 경주 ▲제조업에 대한 국내로의 유(U)턴 유인책 ▲관광·의료 등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등을 건의했다.

산업계 내부적으로는 기존 주력 제품의 품질·디자인·브랜드 등 비가격 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생명과학·신소재·우주항공 등의 다양한 신산업의 기반 조성과 경쟁력 강화, 기술 표준 선점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려는 시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지홍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업의 경영성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다른 기업과의 상대적인 성과는 대부분 경쟁기업과의 경쟁?차이에서 올 것”이라며 “과거 한국 기업들은 자동차·전자 등의 산업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였지만, 이들 산업에서도 최근 2~3년 동안 한국기업들은 경쟁국가 기업들의 성과와 비교했을 때 뒤쳐진 모습이 뚜렷하다”고 꼬집었다.

김민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비스·유통 등의 산업들도 경쟁강도가 점점 높아지는 등 향후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세계 경제는 저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데다 환율 여건 등도 우리기업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이후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장치 산업의 미래인 투자 확충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투자→생산→이윤→재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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