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반대’ 택한 그리스…그렉시트 가나?

그리스 디폴트에 은행 줄부도로 이어질 수도
미국·유럽 ‘충격’…유로화·증시 급락

그리스 국민들이 ‘긴축 반대’를 택하면서 ‘그리스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채권단과의 마지막 협상이 실패할 경우 파국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빠지는 것은 물론 그리스 은행들도 줄부도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까지 일어날 경우 유로존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유로화 가치가 뚝 떨어지는 등 국제금융시장도 출렁이고 있다.

◆반대 61%·찬성 39%

지난 5일(현지시간) 실시된 그리스의 국민투표에서 ‘긴축 반대’가 61%나 차지했다. ‘긴축 찬성’ 39%를 20%포인트 이상 앞서는 압도적 반대다.

국민투표 후 힘을 얻은 그리스 정권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채권단에 즉각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시리자를 신뢰하지 않는 채권단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6일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서 그리스의 유일한 지원책인 ‘긴급유동성지원(ELA)’에 태클을 걸 위험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 시중은행들이 확보한 유동성은 10억 유로 수준에 불과해 ELA를 받지 않고서는 예정대로 7일부터 은행 영업을 재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ECB의 자금줄이 끊길 경우 그리스는 실질적 디폴트에 처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 시중은행들도 줄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디폴트에 처한 그리스는 차용증증서인 ''IOU''를 발행해 당분간 국내 결제는 할 수 있지만, 국제결제는 불가능해진다. 국내 결제도 곧 한계에 부딪혀 자국 통화가 필요한 상황으로 몰릴 것으로 점쳐진다. 즉, 그렉시트까지 이르는 것이다.

ECB가 ELA를 증액한다면 그리스는 3차 구제금융 협상을 통해 유로존에 남을 수 있다. 그렉시트는 그리스뿐 아니라 유로존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힐 것으로 염려되기에 막판 극적인 협상 타결 가능성도 열려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活?“그리스가 붕괴됐을 때 유로존에 1조 유로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채권단이 그렇게 되기까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때문에 ECB는 6일 회의에서 뚜렷한 방향을 잡기보다 7일 유로존 정상회의 등을 지켜본 이후에 다시 ELA를 논의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양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이날 전화통화를 한 뒤 그리스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며 7일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를 요청했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 요청을 받아 7일 저녁 유로존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3차 협상 자신하는 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번 결과를 환영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채 30%를 탕감하고 만기를 20년 늘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며 “반대 결과는 채권단을 압박해 그리스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 발표 뒤 채권단에 즉시 협상을 재개하자며 IMF 보고서에 따라 이번 협상에서는 부채를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루파키스 장관도 “그리스 붕괴는 유로존에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리는 곧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낙관적 전망에 대해 야당과 채권단은 반대하고 있다. 채권단 가운데 강경한 태도인 독일뿐 아니라 그리스에 우호적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상, 쟝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등도 반대 결정은 유럽에서 떠나는 결정이라고 공격했다.

일단 치프라스 총리는 오는 7일 열릴 유로존 정상회의에 참석할 파트너로서의 자격까지 잃을 위험도 감지된다.

이 회의에서 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와 협상을 거부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리스는 지난달 30일 IMF에 빚을 못 갚아 기술적 디폴트에 빠진 데 오는 20일 ECB 부채도 갚지 못하는, 실질적 디폴트로 향하게 된다. 즉, 파국이다.

◆혼란에 빠진 국제금융시장

한편 그리스 국민들의 압도적인 ‘긴축 반대’ 의사가 알려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은 폭풍 속의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우선 유로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블룩버그통신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오전 5시15분 현재 도쿄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전일 대비 1% 하락한 유로당 1.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유로화는 한때 유로당 1.0979달러로 1.1달러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 “이번 투표 결과로 유로존과 그리스의 신뢰가 상당히 훼손됐다”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증시 역시 충격을 받았다.

한국시각 오전 8시 현재 미국 S&P선물지수는 1.3%대, 나스닥 선물지수는 1.4%씩 각각 급락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지수와 카타르 주가지수도 각각 0.47% 및 0.9%씩 내려갔다.

반면 사우디 증시는 0.2% 올랐으며, 쿠웨이트 주가도 상승해 대조를 이뤘다.

이는 향후 그리스와 러시아 관계가 가까워질 경우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산 원유 수입 비중을 낮추고, 사우디-쿠웨이트가 주도하는 중동 석유수출국기구(OPEC)로부터의 원유 수입비중을 높일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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