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폭락의 득과 실③]최대 수혜는 美中…韓경제는?

디플레 증폭시킬 것이라는 견해와 성장 촉진제가 될 것이란 견해 대립

최근 지속되고 있는 국제유가 하락을 두고 세계 경제 회복에는 긍정과 부정 두가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당장은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유가 하락에 따른 피해가 먼저 부각되는 모습이다. 특히, 러시아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유가 하락이 에너지 비용을 줄여 기업 비용 절감, 소비 구매력 제고, 세계 수요 증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석유 순수출국보다 순수입국의 경제규모가 크기 때문에 유가 하락은 대체로 세계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유가 하락으로 태양열과 셰일가스 등 재생 및 대체에너지산업의 피해 가능성이 있고 물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이나 일본도 우려할 부분이 적지 않다.

현재 세계 3대 원유 가격은 60달러를 한참 밑돌고 있다. 3대 원유는 올해 고점대비 48~51%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일 대비 2.36달러 하락한 54.11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는 같은 날 59.27달러를 기록해 60달러 선이 무너졌다. 두바이유 현물가격 역시 배럴당 56.42달러에 거래됐다.

◆ 유가하락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중국 ''G2''

미국은 이번 유가 하락의 최대 수혜국으로 꼽힌다. 미국은 유류 제품 등 에너지 관련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기준으로 5.5%정도이다.

토러스투자증권은 "미국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민간 소비 여력이 0.5%~1.0%p 확대된다"며 "유가가 10% 하락하면 에너지소비 지출이 1.8%p 떨어지고 비에너지晥?소비지출은 1.6%p 증가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유가하락이 자동차 유지비용을 낮춰 미국 산업수요가 조만간 1700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급락은 자동차 유지비용을 줄여서 자동차 수요를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 글로벌 자동차 수요 증가율은 13년 3.8%, 14년 3%로 둔화된 이후 15년에는 3.9%로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소비지출 여력 증가와 산업 개선세는 결국 미국 잠재성장률 성장에 기여한다. 김종수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민간소비가 현재 2% 초반인데 여기에 고용 증가 효과와 물가 안정, 서비스 소비지출이 확대되면 결국 민간소비 성장률이 2.5%에서 3%까지 증가한다”고 판단했다.

중국 역시도 당장 유가 하락의 득을 보고 있다. 중국은 원유 생산국이기는 하지만 수입 의존도가 60%에 달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석유 수입에 쓰고 있었다. 11월 말 기준으로 중국 국가통계국이 공개한 원유 비축량은 9100만배럴 정도였다.

오일캠의 리 얀(Li Yan) 원유 애널리스트는 "유가 하락이 원유 수입 비용을 감소시키고 전략유 비축을 늘리는 등 에너지 안보를 높여 중국 경제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도 국제 유가가 10% 하락하면 중국의 GPD가 0.15% 증가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 수출중심 한국 역시 수혜국 중 하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이 유가 하락으로 GDP의 2.4%에 이르는 원유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까지 떨어진 데 따른 영향을 분석한 결과였다. 또 분석 대상국 중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 경제에서 원유도입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5%다. 원유 가격이 10% 하락하면 수입은 GDP의 0.75%, 20% 하락하면 수입은 GDP의 1.5%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연구소 역시 유가가 10% 하락할 경우 우리 GDP 성장률은 0.19%포인트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수출의 경우 중동, 러시아 쪽 수출이 줄겠지만 주로 원유순수입국이라고 볼 수 있는 중국,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수출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과 더불어 원화가 안전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유가 하락으로 내년도 한국 경상수지는 87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10월까지 707억달러 흑자를 내면서 32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전년 811억달러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강현구 토로스증권 연구원은 "수입액 자체가 낮아지고 있어 수출이 크게 늘지 않아도 내년도 경상수지 흑자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위기가 불거지는 와중에도 원·달러 환율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하락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원화가 안전자산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설비투자의 위축과 유럽과 일본 디플레 가속화는 우려할 부분

자료제공=IBK투자증권
지난 2년간 글로벌경제에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설비투자가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비투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산업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회사였는데 유가가 하락하면서 원유 및 셰일오일(가스) 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 또는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시장 조사업체인 베이커휴즈가 지난 12일(현지시각)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 내 셰일 석유·가스 시추 설비인 ''리그''(rig)의 가동대수는 총 1546기로 전주대비 29기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올해 정점이었던 10월 10일의 1609기와 비교할 때 약 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하면 투자 유인이 없어진다. 이미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하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계기업이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계를 멈춰 세우는 일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이익이 감소하고 주가가 떨어져 금융시장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에너지 기업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유럽과 일본의 디플레 가속화는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물가하락 압력이 크지 않은 미국은 유가하락이 물가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 몰라도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물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현상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 전월 대비 0.3%로 20개월 연속 1%를 밑돌았다. GDP는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일본 역시 부양기조에도 불구하고 2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7~9월 GDP 성장률 확정치가 마이너스 0.5%를 기록했다.

강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유가하락이 가계 소비 여력을 늘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이지만 공급 측면에 우려가 있다"면서 "이 부분이 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춰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물가가 떨어지는 게 문제인데 유가 하락으로 디플레 압력이 지속되면 소비가 지연되고 경기 개선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역 상대국 경제에 따라 경기가 달려있고 수입액이 줄어서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가계부채 등으로 소비가 쉽게 늘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처럼 가속화되는 디플레 우려 속에서도 유가 하락은 여러 분야에서 비용을 낮춰 성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전통적 패러다임을 계속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경기 악화에 따른 원자재시장의 거품붕괴가 현재의 유가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견해와 원자재가격의 하락이 다시 경기를 사리는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유가 폭락 이후 전개되는 국내외 경제의 흐름을 다시 잘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

김슬기 기자 ssg1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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