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의 득과 실①] '석유전쟁'의 시작

'날개 없는 추락' 국제유가…60달러대도 무너져
"감산 없다"…OPEC·미국 '치킨게임' 지속

[편집자 주]국제유가가 무서운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유가가 좌우되면서 한동안 원유 공급과잉 현상은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이미 러시아 경제가 기우뚱하는 등 글로벌경제가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별로 저유가에 따른 손익이 갈려 민감한 업계는 대비책 마련에 한창이다.  본지는 5회에 걸쳐 급속한 유가 하락의 배경과 전망, 글로벌 및 국내 산업별 파장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국제유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원유 시장의 ‘치킨게임’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파장에 전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OPEC과 미국의 ''한판승부''

국제유가가 결국 5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런던 석유거래소(ICE) 선물시장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거래된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1.20달러 하락한 배럴당 59.86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9년 5월19일(58.92달러) 이후 5년 7개월만에 최저 수준이다. 

같은날 두바이산 현물 유가도 전일 대비 3.06달러 내린 배럴당 56.50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다소(0.02달러) 올랐지만, 여전히 55.93달러로 5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유가가 불과 6개월만에 30%나 폭락한 데는 글로벌 불황, 원유 공급 과잉, 달러화 강세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결국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의 ''유가전쟁''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셰일가스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고 채산성이 좋아지면서 미국의 원유수출이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해지고 있다"며 "이를 위협으로 여긴 OPEC, 특히 OPEC의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셰일가스업체들을 고사시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1975년 석유파동 이후 석유수출을 금지하는 역외수출금지법안을 시행했으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906만배럴에 달해 지난 198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 상업원유 재고 역시 사상 최고수준에 다다랐다.

셰일가스로 인해 생산량이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인데, 채산성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셰일가스가 국제 원유 시장에 들어오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에는 장기적인 위협 요소가 된다. 따라서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유가가 계속 떨어지면서 사우디 등도 피해를 입고 있지만,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모든 원자재 가격은 시장 논리에 따라 오르고 내리기 마련"이라며 감산 가능성 자체를 일축했다.

수하일 알마즈루에이 아랍에미리트(UAE) 에너지부 장관도 "현재의 공급 과잉은 비전통적 생산이 증가한 탓"이라며 셰일가스에 대한 경계심을 명백히 드러냈다. 이어 "OPEC에만 감산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며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는 물론이고 40달러대까지 떨어진다고 해도 당장 마음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셰일가스업체들이 모두 고사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 유전의 배럴당 생산원가는 10~17달러인 반면 미국 셰일가스업체의 생산원가는 70~77달러에 달한다. 원가가 1/5 수준밖에 안 되는 점이 사우디가 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다.

원유업계 관계자는 "사우디는 ''유가 전쟁''을 통해 비단 미국 셰일가스업체들을 견제할 뿐 아니라 OPEC 회원국이 아닌 러시아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까지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며 ''1석3조''의 이득을 노리는 사우디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도 저유가…60달러대 머물 듯

이러한 사우디 등 OPEC의 강경한 자세 때문에 미국 셰일가스업체들은 이미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오이겐 바인베르크 독일 코메르츠은행 애널리스트는 "미국 셰일가스업체 대부분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존 길더프 어게인캐피탈 파트너는 "셰일가스는 원유보다 손익분기점이 훨씬 높다"며 "셰일가스업체들은 채산을 맞추기 위해 내년 비용지출을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미국은 ''백기''를 들 의향이 없다. 최근 저유가에도 전략적으로 원유 생산을 감소시키지 않았으며,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장하고 있다.

조 바튼 텍사스주 하원의원은 "지속되는 유가하락이 미국의 원?수출 재개 정책을 펼치는 것을 오히려 더 손쉽게 만들어 줄 것"이라며 ''유가 전쟁''을 멈추긴커녕 반대로 원유 수출에 나설 뜻을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원유 수출을 다시 시작할 경우 자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자재업체인 BHP빌리턴이 지난달 "미국산 원유를 정부의 공식 승인 없이 수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루블화 폭락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마저 후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장관은 "내년 러시아 석유 생산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지난 16일 밝혔다.

원유업계 관계자는 "이번 ''유가 전쟁''의 결과가 향후 국제 원유 시장을 좌우할 것이란 점이 분명한 만큼 미국이 쉽사리 ''패배''를 선언할 것 같지 않다"며 "미국 셰일가스업체들도 최대한 비용을 줄이는 등 다른 방면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저유가가 오래 지속되면, 사우디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국이 고려하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유 생산 원가가 낮을 뿐 아니라 최근 5년간의 고유가로 현금을 풍부하게 쌓아둔 사우디가 간단히 물러설 리는 없다.

때문에 내년에도 국제유가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형성될 전망이다.

EIA는 "내년에도 원유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내년 평균 유가를 배럴당 62.75달러로 예상했다. 

OPEC과 미국, 두 ''거인''의 다툼에 글로벌 경제가 태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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