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음' VS '화려한 변신' 한도-행남 최종 승자는?

두 회사 지난 10년 실적 '엎치락뒤치락'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는 70년이 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표 도자기 기업이다. 두 업체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과거 선조들이 물려준 도자기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한국 도자기의 세계화를 위해 힘쓴 2000년대 초반, 그리고 혼수철 특수가 사라진 혹독한 지금까지. 양사는 반짝반짝 윤이 나다가도 어려움에 때때로 이빨 빠진 그릇처럼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도자기 산업의 산증인인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 전략 등을 점검해 본다.

◆ 한국도자기, ''황실장미 홈세트''로 스타기업…집안싸움 위기도

#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습니다" 벌써 70년 전인 1940년대에 직원들은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 창업 초기 매출의 20~30% 정도가 이자로 나갈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기업사채동결'' 긴급명령에도 끝까지 약속된 일자에 빚을 상환했다. 지금까지 부채가 없고 현금 결제만을 고집하는 한국도자기의 창업 당시 일화다.

국내 도자기 업계에서 한국도자기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68년 ''황실장미 홈세트''를 출시하면서부터다. 황실장미 홈세트는 도자기 업계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한국도자기를 일약 스타기업으로 떠오르도록 이끌었다.

한국도자기는 황실장미의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전국에 대리점망을 확충하고 물량을 맞추기 위해 첨단의 자동화 설비를 들이는 등 유통과 기술, 마케팅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1973년 청와대의 호출을 받으면서 한국도자기는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당시 갑작스럽게 청와대를 방문한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은 "청와대에서 자신 있게 국빈에게 내놓을 수 있는 품질 좋은 한국산 본차이나 도자기를 생산해 달라"는 부탁을 육영수 여사로부터 받았다.

수천 번의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젖소 뼈 50% 이상을 함유한 본차이나 도자기 개발에 성공했다.

본차이나란 동물의 뼈를 재로 만든 본애쉬(Bone ash)를  첨가해만든 자기로 나라마다 본차이나라는 이름을 명기할 수 있는 기준을 본애쉬 함유량으로 정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최소한 30% 함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의 본차이나 도자기엔 50% 본애쉬가 함유돼 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지만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바로 기업 승계와 관련해서 가족 내 잡음이 일어난 것이다.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이 경영권을 장남인 김영신 사장에게 물려주자 김동수 회장의 동생인 김성수씨는 2005년 한국도자기의 인도네시아 공장을 들고 분사해 ''젠(ZEN)한국''을 설립했다.

이후  양사는 "유사상품, 디자인, 모양 등에 현혹되지 말라"고 밝히면서 서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현재 젠한국은 지난해 매출 178억원을 달성해 업계 3위에 올랐으며, 높은 연령층부터 20~30대까지 전 연령을 포용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행남자기, 세계적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 ''차별화'' 

# 일제가 식기마저 공출해가는 모습에 소년은 분개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식기는 우리 손으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소년은 1942년 행남자기를 설립했다. 그는 바로 행남자기 2대 회장을 역임한 김준형 회장이다. 일본에 뺏긴 도자기 문화를 되찾고 과거로부터 내려온 제조 기술과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도자기 산업에 뛰어들었다.

1942년 설립된 행남자기는 약 10년 뒤인 1953년 한국 최초로 커피잔을 생산했다. 이후 1957년 5월 우리나라 최초로 본차이나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 전남 물산공진회에서 특상을 수상했으며, 본차이나에 대한 KS마크 역시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72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행남자기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한층 젊어진 디자인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행남자기는 홈세트, 반상기와 같은 스테디셀러 제품 라인 외에도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카림라시드, 아릭레비, 이상봉 패션디자이너 등과 같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는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디자이너스 컬렉션(Designer’s Collection)''을 선보이고 있다.

행남자기 관계자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 맞춤형 디자인을 해서 혼수 시장에 국한된 주방용품 시장을 보다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행남자기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아릭레비(Arik Levy)와 유명 사진작가 김중만 등이 디자인한 글로?명품 브랜드인 ''디자이너스 컬렉션(Designer’s Collection)’을 출시했다.

이는 유명 디자이너와 도자기의 만남 프로젝트를 업그레이드해 생활자기로서의 용도뿐 아니라 디자인 소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해 소비자의 큰 호응을 낳았다.

지난 2002년 2월 경기 여주에 대지 1만5000평, 월 평균 10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본차이나공장 ''모디''를 준공했다. 행남자기는 모디 공장 준공을 토대로 50여개국에 본차이나 제품을 수출하며 브랜드를 널리 확산시켰다.

또한 사측에서 노조를 먼저 만들어줬다는 사실 역시 눈에 띈다. 행남자기 노조는 창업주 김준형 전 회장이 1963년 ''노동자의 권익을 찾아준다''는 취지에서 사측에서 먼저 만들어 줬다.

행남자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노동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귀찮아하는 직원들에게 노조의 필요성을 직접 설득할 정도였다"며 노조 설립된 후 지난 50여 년간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한국도자기-행남자기, 지난 10년…실적 엎치락뒤치락 

1999년부터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의 매출 비교. (단위:억원)

도자기업계의 맞수인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는 시기별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97년만 해도 4~5개사가 주요 업체로 있었지만, 이후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로 경쟁구도가 재편되면서 이들은 경쟁자이면서도 외국 도자기로부터 내수 시장을 지키기 위한 협력자였다.

1999년 한국도자기의 매출은 476억원으로 행남자기보다 100억원 가량 앞섰다가 2000년 500억원대로 매출이 뛴다. 특판 행사와 같은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쳐 높은 매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300억원대에 그쳤던 행남자기의 매출이 2000년 466억원, 2011년 515억원로 뛰었고 2002년 562억원을 기록해 한국도자기의 실적을 웃돌았다.

행남자기는 2000년 가을 새로운 브랜드 ''모디''를 설립해 고품질의 제품을 자체 생산을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2년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국내 직영판로 및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해 매출 신장을 달성했다.

특히 신규 브랜드 모디는 행남자기가 자체 개발한 본차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한 제품을 영국 유명 백화점 등에 진열하면서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이어진 내수 침체로 양사는 동시에 매출 감소를 겪었고 2005년 한국도자기가 매출 500억원대를 먼저 넘으면서 행남자기를 앞섰다.

당시 한국도자기의 매출 우위는 저가제품 생산량은 대폭 줄이고 고가 생활자기 브랜드 ''프라우나''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 위기 대응 정반대…한도 "한 우물만" vs 행남 "사업 다각화"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도자기 시장 가운데 지난해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젠한국 등 3개 기업는 이 중 1000억원대만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외국산 점유율은 60%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도자기가 세계적인 수준인 것은 맞지만 최근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와 외식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자기 매출은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출도 급감했다. 한국도자기는 2011년 489억원이었던 매출이 2012년 465억원, 2013년 404억원으로 감소했다. 행남자기 역시 2011년 536억원에서 2012년 460억원, 2013년 43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두 업체는 수 십 년간 주력해 온 도자기 사업이 부진하면서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전략은 정반대다. 한국도자기는 도자기 사업에 집중한 반면, 행남자기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도자기는 국내 도자기업계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비상장기업이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상장하려면 경영진 측에서 관심을 보여야 성사되는데 우리 회사는 도자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철학은 한국도자기의 향후 사업전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도자기에 집중한 전략을 세웠다. 

2004년 한국리빙을 설립해 그릇뿐 아니라 각종 주방용품을 만들었지만 이 사업은 도자기와 무관하지 않다. 명품 도자기 업체에서 ''테팔'', ''휘슬러''와 같은 글로벌 주방용품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함이었다.

한국도자기는 ''제품 고급화''를 중점으로 최고급 브랜드 ''프라우나''를 내세워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국도자기는 수천 개의 보석을 세공해 만든 1000만원 짜리 화병(花甁), 크리스탈, 24K골드로 장식한 최고급 커피잔 등을 내놓으면서 고급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해외 수출 매중 비중이 점차 나아지고 있어 프라우나 등 고가 브랜드를 중점으로 마케팅을 확대할 것"이라며 "대량 생산하고 있지만, 나라별로 기호에 맞는 무늬와 색깔로 현지 소비자를 만족하도록 하고 있다"고 향후 사업 전략을 설명했다.

반면 행남자기의 행보는 한국도자기와 사뭇 다르다. 본업인 도자기 사업과 전혀 다른 식품,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행남자기는 지난 2004년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했으나 수익이 나지 않아 2009년 사업을 접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맛김 사업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지난해 행남자기의 전체 매출의 13%를 차지했다.

지난달 26일 상장 후 처음으로 기업설명회를 열어 세라믹 기술력을 활용한 의료기기 시장에 진출하고 중국 CCTV몰 유통을 통해 신규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자기 기술을 토대로 의료기기와 화장품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행남자기 관계자는 "의료기기 매출액은 올해 3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과 2016년엔 82억, 187억원을 달성하는 등 행남자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남자기는 신사업 사업성을 높게 평가하며 매출 성장을 공표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발표 직후 45%까지 급등했던 주가는 행남자기가 올해 3분기에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는 소식에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15일 오전 10시5분 현재 전 거래일 대비 1.39% 내린 3190원을 기록하고 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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