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예상치 못한 시장 역풍에 당혹…이미지 타격

삼성重-ENG 합병 무산, 국민연금 등 참여자들과의 소통 실패
재추진 전망 속 사업구조 재편작업 차질 불가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40조원을 웃도는 종합플랜트 회사로 거듭나겠다며 합병을 결정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양사는 이날 주식매수청구가 과도해 합병시 재무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어 합병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시 기존 주주들이 반대할 경우 대신 주식을 매수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합병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함에 따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계약을 해제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합병 계약이 취소되며 이들 종목은 급락세를 연출했다.

이번 합병 무산으로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재편 작업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사업 구조재편 작업을 진행해왔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실패를 했다.

양사의 합병은 단순히 사업 시너지 차원을 넘어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의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릴 수 있는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조만간 다시 합병 추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진행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 시장 분위기 간과…무리한 ''주가 띄우기'' 결국 실패로

이번 합병 무산 원인에 대해 시장 안팎에서는 시장과의 소통 실패를 지목하고 있다.

삼성은 양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 이상으로 올라가면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매수청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에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 띄우기에 나섰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30일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가는 2만5000원~2만6000원 수준을 맴돌뿐이었다.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주가 상승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이 발표되자 기관투자자, 소액투자자 뿐만아니라 일부 연기금까지도 보유하던 삼성중공업 주식을 팔았다"면서 "삼성중공업의 실적부진, 합병 이후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회사측의 자사주 매입 발표를 일종의 매도 타이밍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양사 합병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는 점을 삼성이 간과한 것도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연기금 등 주요 시장 참여자의 협조가 없다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에서 예상하고 있는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 사업 재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전환 등 추진할 때 국민연금 등 주요 시장참여자들이 반대하면 원활한 일처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주주들 합병 반대…주식시장 출렁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추진 무산 소식에 19일 주식시장이 출렁거렸다. 합병 무산 영향으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각각 6.39%, 9.31% 동반 급락했다. 합병 무산으로 두 회사의 사업구조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이 무산된 것은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합병 조건에 따라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과도하게 많아 회사 입장에선 자금 부담을 우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연금뿐 아니라 주가 급락에 불안함을 느낀 다른 투자자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대거 행사하면서 합병이 무산됐다.

양사 주가는 17일 종가 기준으로 각각 2만5750원, 6만8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인 2만7003원, 6만5439원을 크게 밑돌았다.

허문욱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투자자 입장에선 주식매수청구권 가격과 현 주가 간 괴리가 너무 컸던 게 문제"라며 "투자자들이 합병에 따른 불확실성을 감당하기를 꺼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기종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합병 비율이 삼성엔지니어링을 높게 평가하는 등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보니 반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가 몰렸다"며 "합병 비율만 합리적이면 주주들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합병은 삼성그룹의 대규모 사업개편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었다. 삼성그裏?올해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고 소재 사업은 삼성SDI와 합병시킨 뒤 삼성에버랜드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또 삼성에버랜드의 건물관리업은 삼성에스원에 양도했으며 급식업은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했다. 삼성SNS는 삼성SDS와 합병했으며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미국 코닝에 매각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도 합병했다.

◆ 국민연금, 매수청구권 행사 합병 무산에 영향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무산에는 양사의 주요 주주인 ''큰손''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은 지난 14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과 관련해 양사에 대해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이들 회사의 임시 주주총회 이전에 합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삼성중공업 지분 5.91%,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6.59%를 각각 보유한 국민연금이 이번에 적극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양사의 합병 자체를 반대하려던 것이 아니라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과 워낙 차이가 났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공시된 분기보고서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209만5399주(5.24%)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국민연금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받을 금액은 1274억원을 넘는다.  또 국민연금의 삼성중공업 지분은 4.99%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금액은 3111억원이다.

삼성중공업은 9500억원, 삼성엔지니어링은 4100억원 이상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합병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으므로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금액이 양사에는 큰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 삼성 측, 합병 재추진 가능성

삼성그룹측은 3세 경영에 대비한 계열사 구조개편이 처음으로 좌절됐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오너 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이 없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상 아래에 있다.

따라서 이번 합병 무산이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3세들의 지배구조 개편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분석이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전자가 최대주주이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옛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한 삼성SDI가 최대주주로 돼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중공업·플랜트건설 사업부문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는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측은 "앞으로 합병을 재추진할 지 여부는 시장 상황과 주주의견 등을 신중히 고려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투자업계 내부에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조만간 다시 합병 추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 계획을 해제한다고 했지,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건 등을 조율해 재합병을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삼성중공업 측도 앞으로 합병을 재추진할지는 시장 상황과 주주의견 등을 신중히 고려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합병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면서 "주식매수 청구분이 과다한 점 등 당장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합병계약을 해제했지만 추후 합병이 재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합병 무산됐지만 삼성중공업 주가에는 긍정적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 무산은 오히려 다행이라며 삼성중공업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합병은 해양 부문을 키우는 등 사업적인 이유에서 추진됐지만, 실제 합병을 한다 해도 사업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자금 여력이 있는 삼성중공업이 삼성엔지니어링을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합병이 실제 추진되면 해양산업 전망이 부정적인 가운데 외형이 능력 대비 과도해지고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계열사 간 합병이어서 삼성중공업 입장에서 볼 때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편 두 회사의 합병 차질이 그룹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두 회사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 아닌 변방에 있는 계열사여서 그룹 지배구조와 연결 짓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주주들이 앞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나 승계과정에서 무조건 ''거수기'' 역할만 하지 않고,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한국전력 부지?고가에 낙찰받자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로 현대차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강중모 기자 vrdw8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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