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인하강요…서민금융 '부메랑' 맞을 수 있다

기준금리 불변…가산금리 낮춰 대출금리 내려야 하나
연체자 관리·한계기업 여신분류 비용도 가산금리에 포함돼
"채권추심 강화·기업부실 정리로 채권관리비 낮추는 수밖에"

전국은행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국내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를 비교 공시한 결과, 하나·외환·농협·기업은행 등 4개 은행의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인하에도 오히려 상승했다. 이들 4개 은행은 가산금리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전국은행연합회
시중은행에 대해 대출금리 인하를 무조건 강요할 경우 서민금융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두 달 만에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당연히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려 대출금리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시중은행이 가산금리 인상이라는 ''꼼수''를 부려 수익만 쫓는다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대출금리 인하 요구가 거세지자, 급기야 금융당국은 은행권 대출금리 실태를 들여다보겠다며 현장점검에 착수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과 금융당국의 조사 등 전(全)방위 압박에 굴복해 대출금리는 내려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중은행에 대해 대출금리 인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 대출채권 관리비용 축소위한 ‘연체채권 줄이기’ 시작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결정된다. 이중 기준금리는 한은이 결정하는 항목으로 시중은행이 손을 댈 수 없는 고정 수치다. 결국 방법은 가산금리를 낮춰 대출금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산금리에는 연체채무자 관리비용과 한계기업에 대한 여신분류 비용도 포함돼있다는 데 있다.

가산금리 낮추려면 연체된 允輸ㅁ퓻?대한 추심을 강화하고 한계기업 부실정리로 은행의 대출채권 관리비용을 축소해야 한다. 또 연체채권을 줄이기 위해 여신심사가 보다 엄격해질 수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 대출채권 관리비용이 많이 책정되기 때문에 등급이 낮을수록 이자가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低)신용등급 채무자의 경우 연체가능성이 높아 연체채권 관리 및 채권추심 관련 비용이 등급이 좋은 경우에 비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낮추기 위해 채권관리비용 절감에 들어갈 경우 금융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으로부터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낮추기 위해 가산금리 하향조정에 들어가면 ''냉탕·온탕''이 지금보다 더 극명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등급이 낮은 서민이나 중소기업 등 금융취약계층은 은행대출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의하면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지만, 하위 신용등급에 대한 대출비중은 늘기는커녕 극히 저조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매년 줄고 있다.

실제로 우리·국민·신한·하나·외환은행 등 7개 시중은행과 농협은행, 국책은행인 중소기업은행까지 합쳐도 중소기업대출 잔액 중에서 하위 7~10등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11년 6.5%에서 2012년 5.5%로 1%포인트 급락했고 지난해 4.7%로 또다시 하락했다. 올 상반기에도 4.3%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 경기침체로 대손상각비 증가…기업여신관리비도 늘어

경기침체로 부실기업이 속출하면서 여신 재분류와 함께 대손상각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가산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3분기 대손상각비는 1조63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5.8%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손상각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직전 분기인 2분기에 비해 동부제철 등 특정기업의 충당금 이슈가 늘었기 때문이다.

3분기에는 요주의여신에서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으로 재분류된 동부제철에 대한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또 STX그룹 추가지원 등으로 충당금 문┛?2분기와 비교하면 많이 불거졌다.

올해 6월말 기준 동부제철의 은행권 익스포저(위험노출금액)를 주요 은행별로 살펴보면 하나금융지주가 1780억원, 신한금융지주는 990억원, 우리금융지주는 400억원가량이다. KB금융지주와 IBK기업은행 여신규모는 각각 100억원 미만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중은행이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가산금리는 올리는 꼼수를 통해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아 수익추구에 혈안이 됐다는 국민적 인식이 퍼진 데다 금융당국의 현장점검마저 있어 대출금리는 어떻게든 낮출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일정수준 이상의 예대마진과 순이자마진(NIM) 확보가 힘들게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계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구조조정 작업을 가속화하고 여신심사를 엄격히 해 부실을 빨리 털어내는 방식으로 리스크관리를 강화하는 게 현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산금리를 만지는 대신 우대금리를 얹어 대출금리를 내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관계자는 "우대금리를 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며 "경영실적을 무시하고 고객에게 무한정 우대금리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내은행 가계대출금리 운용현황. 자료=전국은행연합회
◆ 일부은행들 때문에…가산금리 상승, 주택금융공사 탓?

가산금리 산정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있어 왔지만, 각 시중은행들은 ''가산금리 산정기준''은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대출금리 인하 요구까지 겹치면서 더욱 민감한 사안이 됐다.

전국은행연합회는 논란이 커지자 적극적인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취급분 은행 가계대출금리 비교공시와 관련, 분寧鑽?逆?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일부은행에서 가산금리를 인상해 금리인하 효과가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심현섭 은행연합회 여신제도부장은 "기준금리는 전월 대비 하락했으나,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금리조정형 적격대출을 취급한 은행들의 경우 주택금융공사가 대출채권 매입금리를 변경함에 따라 가산금리가 상승했다"고 해명했다.

심 부장은 "일반신용대출은 기준금리와 가산금리가 모두 하락해 지난달 취급분은 전월에 비해 0.17%포인트 내렸다"고 덧붙였다.

은행연합회가 공개한 ''국내은행 가계대출금리 운용현황''을 보면 주택금융공사의 대출채권 매입금리는 지난 8월 3.30%에서 9월 3.47%로 0.17%포인트 오른 데 이어 같은 달 중에도 0.25%포인트 되레 급등하면서 3.72%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전격 인하해 연 2.25%로 낮춘 시기다. 다만 이달 들어서는 3.53%로 떨어졌다.

일시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도 기준금리 인하에도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에 따른 저신용자 대출비중이 증가하면서 우대금리 적용고객이 감소해 가산금리가 올랐다는 게 은행연합회의 주장이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20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