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내려놓은' 임영록…이제 공은 KB이사회로

임 前회장, 소송취하·이사직 사퇴…KB사태 '일단락'
회장·행장 겸직하나…"일단 지주회장부터 뽑고 나서"
10월2일 1차후보 10여명→4명→10월 하순 단수추천

서울 명동 소재 KB금융지주 본사. 사진=KB금융지주
전날 임영록 전(前) KB금융지주 회장이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제 KB금융그룹 경영정상화의 공은 이사회로 넘어갔다.

임 전 회장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포함한 일체의 행정소송을 취하하고 등기이사직에서도 자진 사퇴해 KB금융 사태는 ‘일단락’됐다는 평가다. 특히 임 전 회장을 해임한 사외이사들이 부담을 덜면서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6일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는 다음달초 100명 안팎의 전체 회장 후보군을 확정한 후 같은 달 2일 제3차 회의를 통해 10여명의 1차 후보군을 추릴 예정이다.

이들 후보군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평판조회를 하고, 제4차 회의에서 4명 내외로 2차 후보군을 압축한다. 약 4명으로 추려낸 2차 후보군에 대한 심층면접을 거쳐 빠르면 10월 하순경 최종 회장 후보자 1인을 선정하고 이사회에 단수 추천할 계획이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열린 KB금융 회추위 2차 회의는 김영진 위원장이 선임된 이후 첫 회의이니 만큼, 금융권의 관심이 높았으나 지주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할 것인지 아니면 겸직하게 할 것인지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관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 관계자는 회장 선출 일정이 다소 늦어지는 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전의 사례에 비춰 봐도 새 회장을 뽑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너무 빨리 결정하면 ‘졸속인사’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영정상화와 업무공백, 혼선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지만 신중하게 추진하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강조했다.

KB금융은 이번 차기 회장 선출방법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해 전임자인 임영록 회장 등 ‘쇼트리스트’에 포함된 후보자에 대한 심층면접을 서울 명동의 한 호텔 모처에서 비밀리에 진행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KB금융지주 본사 내 회의실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실인사’라는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 회장 선정기준 이례적 공개…주주·노조 의견도 수렴

KB금융 회추위는 그동안 낙하산 인사 및 폐쇄적인 회장 선출과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던 만큼 이례적으로 ‘최고책임경영자(CEO) 후보 자격기준’을 공개했다.

구체적인 평가항목은 ▲CEO로서의 충분한 개인적 품성과 자질 ▲폭넓은 리더십 역량 ▲금융산업 및 금융회사 경영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 ▲KB금융의 경영환경에 적합한 경영능력 등으로 구분돼 있다.

KB금융은 “회장 선출과정과 관련한 회사 대내외의 제반 규정을 검토한 후 회추위 일정과 운영규칙, 후보군 구성 및 압축방법, 자격기준 등을 결정했다”며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법률이나 모범규준이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나 선제적으로 ‘CEO 후보 자격기준’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KB금융 회추위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되며 ‘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내부와 외부인사 중에서 후보군을 선정하게 된다. 서면평가와 평판조회, 심층면접을 통해 최종 회장 후보를 압축한다.

KB금융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의하면 전(全) 계열사의 상무급 이상 임원이 모두 후보군에 포함된다. 외부 후보는 헤드헌팅업체와 이사회 추천을 받는다.

이사회 산하 위원회인 평가보상위원회가 주관하는 ‘CEO 승계 프로그램’에서 관리하는 내부 및 외부 후보군 가운데 평가결과 B등급 이상을 받은 60여명의 후보군과 외부 전문기관(Search Firm) 2곳의 추천, 2명 이내의 회추위원 추천(필수는 아님) 등을 통해 약 100명 내외의 최초 후보군을 구성할 예정이다.

1차 후보군 압축은 각 위원이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순위에 차등을 두고 5명의 후보를 추천해 상위 득점자 10여명의 후보군을 확정할 방침이다.

다시 2차 후보군 압축은 각 위원이 1순위에서 3순위로 순위에 차등을 주고 3명의 후보를 추천해 상위 득점자 4명 내외의 후보군을 추린다.

이들 4명 정도의 후보군에 대해서는 후보별로 각각 90분 동안의 심층면접을 실시하는데, 5분의 자기소개와 85분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다.

인터뷰 종료 후 후보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회장 후보 추천을 위한 투표를 진행해 재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최종 회장 후보로 선정하고, 임원 자격검증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 받아 이상이 없으면 이사회에 회장 후보로 단수 추천할 전망이다.

KB금융은 1차 및 2차 압축 후보군을 후보들의 동의를 전제로 공개하고, 특히 주주와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회추위 간담회 등을 통해 수렴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임 회장 선임 당시에는 전체 후보군 명단 확정부터 면접대상자를 추린 후 심층면접과 최종 회장 후보 선임까지 보름가량 걸렸다.

◆ 회장·행장 ‘겸직’ 결론 못 내려…회장 선임 뒤로

KB금융 회추위는 회장이 행장도 ‘겸직’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KB이사회는 이 문제를 당장 결론짓기 보다는 차기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 결정하는 쪽으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규정상 국민은행장 선임은 회장이 선임된 뒤에 진행된다. 은행장 후보는 지주 회장과 사외이사 2명 등 총 3명으로 구성된 ‘계열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대추위)에서 뽑는다.

이 때문에 KB금융의 회장·행장 겸임 여부는 새로 선출될 회장의 결단이 중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B금융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회추위에서 회장과 행장을 겸직해라 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회장 선임 후에 결정하는 게 옳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B 내분사태에 있어 ‘이사회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마당에 KB금융 안팎의 겸임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사진들이 회장 선출 이후로 결정시기를 미룸으로써 여론을 살필 시간을 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정기간 겸임을 하면서 KB금융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체제도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중량감 있는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선출하되 은행 내부 출신의 은행장을 뽑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4대 천왕으로 불린 어윤대 전 회장과 국민은행 내부 출신의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의 전례를 염두에 둔 생각이다.

이 대안은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간의 내홍으로 촉발된 KB사태에 비해 회장과 행장 간의 갈등이 있을 수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번 KB금융 경영진 내분사태의 주된 원인이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 만큼, KB금융 내부 인사나 KB금융에서 재직한 뒤 퇴임한 인사가 회장 후보로 유력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김영진 KB회추위원장은 “(사외이사 거취 문제는) 회장 선임 이후 각자 결정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해 지주 사외이사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차기 회장 선임 이후 개별적으로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 임 前회장에 대한 검찰수사는 그대로

KB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과정에서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임영록 전 회장을 조만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국민은행 전산센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과 관련 자료들을 분석하며 임 전 회장과 소환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물과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에서 임 전 회장이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은행 이사회 보고자료 등을 허위로 작성했는지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5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위치한 국민은행 전산센터에 수사팀을 보내 임 전 회장과 KB금융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인 김모 전무 등 관련부서 핵심 임직원들의 이메일 내역을 확보했다.

같은 날 금융감독원은 임 전 회장과 김 전무, 문모 KB지주 IT기획부장, 조모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사업 핵심 관련자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검찰은 주전산기 교체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지난달 26일 이번 사건 관련자 3명을 고발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법률대리인을 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고발경위와 사실관계 확인을 이미 마친 상태다.

주전산기 교체과정 중 기존 IBM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 교체될 수 있도록 외부 컨설팅보고서를 유닉스에 유리하게 왜곡하거나 실시하層?않은 성능검증(BMT)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했다는 취지다.

검찰은 임 전 회장을 상대로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사업 추진과정에서 금품이 오고 갔는지 혹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사업 비용이 2000억~30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임 전 회장이 주전산기 교체사업 추진과정에서 금품을 챙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과정에서 임 전 회장에게 업무방해 혐의와 더불어 배임수재 혐의가 추가될지 여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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