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 5개월 진통끝 일단락…여전히 남은 숙제

KB금융 회장추천委 가동예정…소송戰 남아
2~3주後 법원결정 변수…이사직 유지도 문제
저축銀 사태 '승소'이끈 태평양, 이번엔 임영록

지난 3일 KB금융그룹이 개최한 ‘함께하는 KB희망음악회’ 당시 음악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사진=KB금융지주
KB금융지주 이사회가 전날 임영록 KB금융 회장을 해임하기로 의결하면서 5개월간 지속됐던 ''KB 내분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임 회장이 지난 16일 금융당국의 3개월 직무정지 중징계에 반발해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불씨가 완전히 커졌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KB금융 경영리스크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18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물러나면서 KB금융은 경영진을 새로 구성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임 회장을 해임한 KB이사회는 내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 가동 등 임 회장 해임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해임안건 통과까지 진통이 적지 않았다. 일부 사외이사가 "관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격론이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임 회장이 자진사퇴할 기회를 주기 위한 설득 작업도 이뤄졌다.

그러나 임 회장이 끝까지 이를 거부하면서 KB이사회는 "KB 내홍을 추스르고 조직 안정을 도모하자"는 데 뜻을 모아 한밤중에 해임안에 합의했다. 금융당국과 맞서서 득이 될 게 없다는 속내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KB를 위해 사태 장기화로 LIG손해보험 인수 무산 등 추가적인 경영손실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정부 지분이 단 1%도 없는 순수 민간 금융회사가 당국의 입김에 스스로 최고책임경영자(CEO)를 끌어내렸다는 좋지 않은 전례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자기사람 심기…모피아 vs 키피아 ''파벌싸움''

이번 KB사태를 들여다보면 ''낙하산 인사''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KB금융 수뇌부 내분 사태의 근본 원인은 낙하산 인사와 이로 인한 파벌싸움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해 온 ''모피아'' 출신인 임영록 회장과 박근혜 정부 들어 파워 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키피아'' 이건호 행장이 파워게임을 벌인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임 회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차관보를 거쳐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 고위공직자 출신이다. 이에 반해 이 전(前) 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낙하산 인사로 인해 조직 내부에 ''자기사람 심기''가 시작됐고 그러다 보니 파벌싸움과 줄대기 문화가 심각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KB사태도 IT본부장 인사 마찰로 빚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평소 지나친 원칙주의자로 소문난 이 전 행장이 이런 문제를 참지 못하고 임 회장의 절대 권력에 반기를 들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관피아 출신 지주회장이나 은행장의 막강한 금융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학연·지연의 줄대기 문화가 반복되면서 CEO 리스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차기 수장을 선출할 KB금융 회추위에 대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KB금융 회추위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되며 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내부와 외부인사 중에서 후보군을 선정하게 된다. 서면평가와 평판조회, 심층면접을 통해 최종 회장 후보를 압축한다.

KB금융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의하면 전(全) 계열사의 상무급 이상 임원이 모두 후보군에 포함된다. 외부 후보는 헤드헌팅업체와 이사회 추천을 받는다.

이번 KB금융 경영진 내분사태의 주된 원인이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 만큼, KB금융 내부 인사나 KB금융에서 재직한 뒤 퇴임한 인사가 회장 후보로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임 회장 선임 당시에는 전체 후보군 명단 확정부터 면접대상자를 추린 후 심층면접과 최종 회장 후보 선임까지 보름가량 걸렸다.

국민은행장 선임은 회장이 선임된 뒤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장 후보는 지주 회장과 사외이사 2명 등 총 3명으로 구성된 계열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대추위)에서 뽑는다.

◆ KB사태, 꺼진 ''불씨'' 다시 살아날 수도

빠르면 2~3주 안에 나올 법원 결정이 변수다. 본안소송에 앞서 임 회장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2주일 이내에 수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박동창 전 KB금융 부사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법원은 소송 제기자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일단 받아 준 뒤 본안소송에서 시시비비를 다투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법원이 임 회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이사회는 임 회장을 해임할 명분이 약해지게 된다. 금융위원회의 ''3개월 직무정지'' 처분도 효력이 정지돼 임 회장은 회장직에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게다가 임 회장은 이번 해임안 통과로 ''회장직''을 내놓기는 하지만 ''이사'' 자격은 당분간 유지된다. 이사직 해임은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돌발 상황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자체 변호사와 실무진 등으로 합동 비상대응팀을 꾸리는 한편, 곧 대형 로펌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예전 저축은행 사태 때 금융당국은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해 승소한 적도 있으나, 이번 소송에서는 태평양이 임 회장 측 대리인으로 나선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임 회장이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에 따라 이사회 해임안 의결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이사회까지 돌아선 마당에 이사직에서 스스로 사퇴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의 합동 비상대응팀은 이날 오전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갖고 ''회장 해임 결의''에 따른 주요 현안을 점검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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