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져 가는 KB '내부갈등'

임영록-유닉스·이건호-IBM 커넥션?
고민하는 금감원, 추석 전 최종 제재 수위 결정할 듯

KB금융그룹의 내부갈등이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분위기다.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의 고발로 지주-은행 간 갈등 재점화가 염려되는 가운데 ‘임영록-유닉스’ 및 ‘이건호-IBM’ 커넥션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르면 추석 전에 두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 수위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여겨지나 하필 두 CEO의 경징계를 결정할 당시의 속기록이 없어 난감해하는 눈치다.

◆KB 내부갈등은 유닉스와 IBM의 대리전?

이 행장은 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해말의 국민은행 IT본부장 인사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IT본부장은 지난해말 조근철 상무로 교체됐다. 그 뒤 국민은행 이사회는 주 전산기를 현재의 IBM 메인프레임 기반에서 유닉스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안을 결의했다.

그러나 금감원 조사 결과 이 과정에서 KB지주와 국민은행 임원 몇 명이 유닉스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를 숨기는 등 테스트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중징계를 받았다.

이 행장은 “주 전산기 교체에 대한 임 회장이 부당하게 개입한 건을 앞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소명했으며, 고발장에도 처음에는 임 회장 개입 사실이 포함됐었다”며 임 회장과 유닉스의 커넥션에 대한 의심을 짙게 풍겼다. 

또 이 행장은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하기 전에 IBM 인사와 만났으며, IBM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해 ‘이건호-IBM’ 커넥션 의구심을 키웠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KB금융의 내부갈등은 각각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내세운 유닉스와 IBM의 대리전 양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행장은 “IBM과는 잠깐 만났을 뿐이며, IBM의 이메일은 즉시 관련 임원에게 전달했다”며 ‘커넥션설’을 전면 부인했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달 26일 김재열 KB금융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 문윤호 KB지주 IT기획부장, 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3명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모두 유닉스 시스템 조작혐의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임원들이다. 반면 똑같이 중징계를 받은 정윤식 상무는 고발당하지 않았으며, 조 상무가 해임당한 것과 달리 정 상무는 전략본부장 자리에 유임돼 의혹을 키웠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자칫 은행에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위법행위를 한 인사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은행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고발 건은 임 회장과 관련이 없다”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아울러 이 행장은 “사퇴 건은 이사회에 일임했다”며 “다만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이 행장의 거듭된 부인에도 ‘커넥션설’과 ‘갈등설’ 등 의혹의 구름은 점점 커져가고만 있어 KB금융을 둘러싼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속기록, 왜 없나?

일단 KB금융의 내부갈등을 끝낼 키를 쥔 것은 금감원이다.

금감원 제재심은 지난달 두 CEO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으며, 최종 제재 수위 결정은 최 원장에게 달려 있다.

최 원장은 이르면 추석 전에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필 최 원장에게 보고될 제재심 관련 속기록 중 두 CEO의 경징계를 결정한 부분이 빠져 있어 난감한 분위기다.

당초 금감원은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통보했으며, 검사부도 중징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제재심은 최종 심의에서 결국 두 CEO에 대한 중징계를 경징계로 하향조정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식 회의실이 아닌 별도의 방으로 옮겨 논의했으며, 때문에 속기록에서도 최종 결정 과정이 빠짐으로써 의혹을 키웠다. 징계 수위가 공식 회의실이 아닌 곳에서 결정된 것은 전례에도 없던 사건이다.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결국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징계 감경은 감사원과 정치권의 압박에 의한 결과 아니냐. 정치권 압박이 있었던 사실을 공식 속기록에 남길 수는 없으니 별도의 방으로 옮겨 논의한 듯 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국금융산업노조를 비롯한 정치권 움직임이 최 원장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미 “임 회장과 이 행장뿐 아니라 최 원장도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국정감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은 최 원장, 임 회장, 이 행장 등을 국감장에 소환해 이번 ‘KB 사태’에 대해 따질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태 새누리당 국회의원 역시 “어설픈 처신을 하는 최 원장에 대해 새누리당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금감원은 여야 정치권에 포위된 형국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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