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다시 급등세…한달만에 4조↑

8월 가계대출 가파르게 상승…규제완화·금리인하 영향
가계부채 질적 악화 가능성 우려돼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가계소득에 비해 부채 증가속도가 빨라지면서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7개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한 달 만에 4조원 가까이 불어남에 따라 가계부채에 따른 금융시장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기업·외환 등 7개 주요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297조7000억원에서 지난 28일 301조5000억원으로 한 달 사이에 4조원 가까이 늘었다.

주요 은행의 주택대출 잔액은 올해 초부터 매달 평균 1조6000억원가량 증가세를 보이다가 이달 들어 갑자기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은행권의 주택대출 급증은 사실상 이미 예견된 일이다.

정부가 은행 주택담보대출에 적용해온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이달부터 완화한 데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금리 인하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는 한동안 더 가팔라질 수 있다.

가계 신용대출도 이달 들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7개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올해 7월말 79조9000억원에서 이달 28일 81조1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2000억원 증가했다. 개인신용대출은 지난해 말(79조6000억원)부터 7월까지 잔액에 큰 변동이 없었다.

정부는 LTV·DTI 완화로 제2금융권의 주택대출이 금리가 낮은 은행권으로 전환돼 오히려 가계부채 구조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 가능성에 더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휴가철인 8월에는 주택 매매가 활발하지 않은 만큼 LTV·DTI 규제완화에 따른 대출 확대가 주택구매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서 최근 규제 완화에 따른 은행권 대출 증가세가 가계부채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8월 주택담보대출 증가분 중 상당수가 생활자금이나 자영업자의 사업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계부채의 질 문제는 가계소득 증가가 부채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도 불거진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부채(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지난 2008년 말 723조5000억원이었던 가계부채 잔액은 지난해 말 1021조4000억원으로 연평균 8.2% 증가했다.

반면 통계청 가계수지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가계소득은 같은 기간에 337만원에서 416만원으로 연평균 4.7% 증가하는데 그쳤다.

새 경제팀은 내수활성화와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 ‘3대 패키지’ 세제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가계소득이 정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으면 규제 완화로 탄력을 받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부작용만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리테쉬 마헤시와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전무는 지난 29일 한 세미나에서 “한국은 민간부문의 부채 수준이 높아서 경제 성장이 둔화하거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경제여건이 나빠지면 신용도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 20명이 1000만원씩 빌리는 것과 부유층 1명이 2억원을 빌리는 것은 대출 총량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며 “LTV·DTI 완화와 금리인하가 주로 어떤 대출을 유발했는지 가계부채의 질 변화를 정부가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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