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금감원의 '경징계'…압박에 굴복?

"감사원.정치권 압박에 굴복했다" VS "처음부터 중징계는 무리였다"
금융노조 "최수현 원장·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 사퇴하라!"

금융감독원이 결국 입장을 바꾸면서 금융권이 시끌시끌한 분위기다.

2개월 간의 씨름 끝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에 대한 중징계를 경징계로 전환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전국금융산업노조와 산하의 국민은행지부 등은 “임 회장과 이 행장뿐 아니라 최수현 금감원장도 물러나라”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 징계수위 낮춘 배경은?

지난 2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연 금감원은 자정을 넘긴 마라톤 회의 끝에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주의적경고’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 검사담당 부서는 두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문책경고’ 수준의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위원들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소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면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해서는 원안대로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제재심은 또 전산기 교체와 도쿄지점 부실 대출, 국민주택채권 위조 관련자 등 총 87명에 대한 제재를 의결했다.

이번 두 CEO에 대한 제재 수준은 당초 금감원이 사전통보했던 중징계보다 한 단계씩 낮아진 것이다.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감사원과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감사원은 “국민은행에서 KB국민카드 분사 당시 고객정보 이관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을 필요는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금융당국의 임 회장 제재 근거 중 하나를 무너뜨렸었다.

또 정치권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 구하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문도 여러 차례 돌았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중징계를 내릴 경우 임 회장과 이 행장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 확실시되는 부분도 금감원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간 중징계 처분을 받은 금융사 임원은 자진사퇴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문책경고’를 받고도 임기를 채울 뜻을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뀐 상태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중징계를 맞은 뒤 물러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최소 1년 이상 지리한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금감원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다.

두 CEO는 모두 대형 로펌과 계약한 뒤 소명을 진행해 만약 중징계 처분을 받을 경우 이들이 행정소송까지 담당할 것으로 여겨졌었다.

반면 “처음부터 중징계는 무리였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내부갈등,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듯 하다”고 말했다.

◆노조, “권력의 눈치 본 결정”

일단 제재 수위가 경징계로 결정되면서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되지만, 경징계로 낮아지면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KB금융그룹 역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동시에 사퇴할 시 발생하는 최소 수개월 간의 경영공백을 피하고, 다시 안정적인 경영을 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남긴 후폭풍은 결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22일 기자회견을 개최,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물론 최 원장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성낙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금감원은 로비설과 외압설로 의혹만 증폭시키면서 조사권과 징계권을 스스로 무력화시켰다”며 “최 원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 원장이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마지막 남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정상 제재심의 결정에 금감원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행사된 적은 없다.

국민은행 노조의 상위기관인 금융노조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낙하산 인사들의 권력 다툼으로 극심한 혼란을 초래한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경영진을 경징계 조치한 것은 금감원이 권력의 하수인임을 자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관치 낙하산’ 임 회장과 이 행장 및 권력에 야합한 최 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며 “사퇴하지 않을 경우 2차, 3차 총파업 투쟁까지 감행, 반드시 금융권에서 퇴출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노조는 오는 9월 3일 총파업을 실시할 예정이며, 총파업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관치금융 철폐’다.

뿐만 틈灸?KB금융의 내부갈등 치유도 골칫거리다. 이번 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 사태로 KB지주와 국민은행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였다.

이 행장은 일단 “이사들과 주 전산기 문제부터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민은행의 사내이사들과 사외이사들 간 갈등 역시 상당해 치유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두 CEO의 제재 수위와 관련해 금융위는 금감원에 ‘중징계’ 방침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징계’ 결정을 두고 양 기관의 갈등 발생도 우려된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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