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보전한 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

금감원, 두 CEO에 '경징계' 결정

당초 ‘문책경고’ 수준의 중징계를 사전통보받아 사퇴 압박의 위기에 처했던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

지난 2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두 최고경영자(CEO)에 관한 제재 수위 등을 논의한 금융감독원은 자정을 넘긴 마라톤 회의 끝에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주의적경고’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제재는 최수현 금감원장의 결재를 거쳐 최종 확정되지만, 과거 결과가 바뀐 전례가 없는 점으로 비춰 볼 때 이번 징계가 사실상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두 CEO에 대한 제재 수준은 당초 금감원이 사전통보했던 중징계보다 한 단계씩 낮아진 것이다.

반면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해서는 원안대로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제재심은 또 전산기 교체와 도쿄지점 부실 대출, 국민주택채권 위조 관련자 등 총 87명에 대한 제재를 의결했다.

임 회장은 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에서 불거진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 행장은 내부통제 부실과 도쿄지점 부실 대출에 대한 당시 리스크관리 담당 부행장으로서의 책임 등을 추궁받았다. 

금감원 검사담당 부서는 두 사람에 대한 문책경고 수준의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두 CEO의 적극적인 소명을 들은 위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임 회장에 대해서는 “전산 시스템 변경은 은행 이사회와 경영진의 마찰로 지주 회장으로서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등의 소명이 일부 받아들여졌다.

이 행장에 대해서도 CEO로서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부통제에 허점을 드러낸 책임이 있지만, 이사회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금감원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점 등이 고려됐다. 위원들은 아울러 5000억원이 넘는 도쿄지점 부실 대출에 대해서도 실무자의 부당 대출의 책임을 당시 리스크 부행장이었던 이 행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경징계 결정으로 KB금융그룹은 일단 경영진 공백의 위기를 넘기게 됐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경우 향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금지되는데, 그간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사퇴하는 게 관례라 사실상 ‘금융권 퇴출 결정’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제재 수위가 한 단계 낮아지면서 두 CEO가 물러날 위험은 사라졌다. 주 전산시스템 교체?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던 정병기 감사 등도 퇴진 압박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제재심이 두 달이 넘게 끄는 사이 KB금융의 내부갈등도 깊어져 치유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주와 은행간, 은행 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간의 화해가 무난히 진행될 것인지도 문제고, 국민은행 노동조합 역시 두 CEO가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2개월이 넘게 KB금융의 경영 공백을 야기하며 분란을 키운 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간 이견, 감사원의 개입을 불러온 유권해석의 문제 등으로 금융당국도 한동안 이번 제재 결정의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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